오늘은 모처럼 ‘없는 생활에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로 편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희 부부는 치열한 고민 끝에 무자녀의 삶을 선택했고, 이 삶을 더할 나위 없이 즐기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가끔 외롭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가 없어서 오는 감정이 아니라 기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입니다.
제 친구들에게는 모두 아이가 있어요. 열 명이 친구라면 저 빼고 아홉 명에게 아이가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언제나 이야기 주제는 자연스럽게 아이와 육아가 중심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엄마가 된 친구들이 신기하고 대단하게 느껴지고, 또 조카들이 귀여운 마음에 열심히 경청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허공을 바라보거나 흘려듣고, 단톡방에서도 대답을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저를 제외한 단톡방도 있는 걸 알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습니다.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면 그 방에 초대되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그동안 모임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편이었기에 이런 상황이 좀 어색합니다. 섭섭하기도 하고요.
‘그럼 그 모임을 안 나가면 되겠네!’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가장 빛났던 청춘을 함께한 인연들이기에 이들과 멀어지면 마치 제 과거를 지워버리는 느낌이 들어요. 또 누군가는 우스갯소리처럼 “그럼 너도 한 명 낳아!”라는 말을 하지만, 그건 정말 최악의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답은 친구들과의 인연을 포기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한데…마음이 서글프고 답답해서 이렇게 두서없이 적어 봅니다.
- 낭만계절]
낭만계절 님께서 보내주신 편지를 읽으며, 무자녀 삶을 선택한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우정이라는 문제는 확실히 간단하지 않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아이를 갖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이 선택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큽니다. 아이를 낳은 여성들의 인간관계가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양육자 모임, 동네 놀이터나 키즈카페 친구 모임, 학부모 모임 등으로 이동하거나 확장된다면(물론 이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감정노동이지요), 무자녀 여성의 인간관계는 대개 좀 애매한 위치에서 축소되기 쉬운 것 같아요. 물론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다 보니 새로운 영역에서 확장될 가능성도 있지만, 기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갈등을 겪는 시기가 오는 거지요.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에서도 이 주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서른을 지나고 마흔을 향해 가는 동안 알게 된 것이 있다. 여자들의 친구 관계는 대개 결혼을 중심으로 한 번, 출산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재편된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 많은 여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사실 결혼보다는 출산이 훨씬 인간관계에 큰 변동을 가져옵니다. 세상에 처음부터 적응해야 하는 존재가 삶에 더해지는 일이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다만 저는 남성들이 이런 문제로부터 지나치게 자유롭거나 무관심하다는 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생활이 너무나 달라지고 삶의 중심도 달라지면서 내 친구는 내가 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만나기도 어렵고 연락도 어렵고 만나더라도 상황은 제한적인 데다 집중도 역시 떨어집니다. 갑자기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가 급히 돌아가기도 하고, 아이가 있는 친구들끼리 육아 얘기만 나눌 땐 내가 어느새 대화의 참여자가 아니라 방청객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하죠. 그 단톡방에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닌데, 나만 빠져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서운하고요. 무엇보다 서글픈 건, 그동안 즐거운 일이든 화 나는 일이든 온갖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던 친구들과 나의 이 답답한 마음만은 나눌 수 없다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심지어 이런 감정을 들키지 않고 혼자 삭여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더해지죠. 제가 만난 무자녀 여성 상당수가 이와 비슷한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 있는 기혼 여성 사이에 혼자 끼는 자리는 잘 만들지 않아요. 일단 그 조합으로 시간 맞추기가 어려우니까 따로 한 명씩 만나요. 그래야 그나마 얘기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아이 가진 친구들을 만날 땐 시간 여유 있는 제가 더 움직이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친구가 아이 얘기하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들어요.”
제가 만났던 재경 님은 우정을 유지하는 방법에 관해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제가 여기서 특히 눈여겨보는 지점은 ‘따로 한 명씩 만난다’인데요. 아무래도 나를 제외한 모두가 양육자인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수가 관심 있는 주제에 몰입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게 즐겁겠지요.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나를 조금은 배려해주면 좋겠지만, 비단 이런 경우가 아니라도 사람이란 존재는 본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일대일로 만나게 되면 관계의 구도가 달라지면서 대화의 폭이나 중심이 바뀔 수도 있거든요. 저도 보통 땐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모여 주로 농담만 주고받던 친구와 어느 날 단둘이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평소 들을 수 없던 여러가지 생각이나 속마음을 훨씬 깊게 알 수 있게 되어 무척 좋았어요. 물론 단둘이 만났는데도 계속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친구라면(그 주제가 아이든, 덕질이든, 부동산이든) 그냥 좀 거리를 두는 게 낫겠지만요.
또 한편으로 저는, 인간관계라는 건 누적이 아니라 순환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나의 좋았던, 빛났던, 어렸던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의 존재는 소중하지만, 그 만남에서 얻을 수 있는 위안이나 즐거움보다 그 관계를 유지하는 데 대한 스트레스가 더 크다면 이것은 계속 우정일 수 있나 싶은 거죠. 미묘하게 서운하거나 불편한 감정이 쌓이는 관계라면 너무 참거나 애쓰지 말고 좀 멀어지는 게 서로에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관계는 어느 시점에 수명을 다해 낙엽이 떨어지듯 내 삶에서 사라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죠. 이렇게 말하는 저 역시, 사람은 나이 들면 기대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박막례 할머니 말씀대로 나중에 계모임 할 친구조차 안 남을까 두려워하며 지내긴 하지만요.
물론 나이를 먹고 나서 새 친구를 사귈 수도 있습니다. 오래 알고 지내면서 어느 시절을 공유한 친구들과의 편안함도 있지만, 살면서 관심사나 생각이 바뀌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나 즐거움을 알려주는 친구도 있으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내 취향이나 가치관이 좀 더 뚜렷해진 다음에 만난 사람들이 더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구요.
그러니 지금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에 대해 너무 외롭게 느끼시지 않으셨으면 해요. 단톡방을 당분간 안 보셔도 괜찮고, 리액션 하려고 노력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만약 그걸로 멀어질 관계라면 거기서부터는 낭만계절 님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또,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면 친구분들과 다시 가까워질 시기가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아이가 태어나 적어도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발생하다 보니 양육자들도 육아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결국,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시간인 것 같습니다.
마침 오늘은 어린이날이네요. 세상 모든 어린이에게 행복한 날이 되면 좋겠는데 비가 와서 걱정이에요. 기대와 설렘을 안고 잠에서 깨어났을 어린이, 그리고 함께할 어른들에게 행운이 있길 바랍니다. 저희 집 어른들은 일단 늦잠을 자고 일어나 일요일은 아니지만 짜파게티나 끓여 먹을까 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 추신
지난번 저의 변덕규 스토리, ‘꼴찌가 되는 법’에 답장 주신 모든 분 정말 감사합니다. 물론 저는 이번 주에 강의 시간에도 한껏 횡설수설한 다음 내내 가상의 벽에 머리를 들이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만 그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아주 조금 덜 외롭더라고요. 비단 공부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이만큼 나이를 먹어도 여기저기 부딪히고 깨지며 각자의 좌절감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어요. 다들 자기 속도로 잘 버텨 보도록 해요.
‘익명의 구독자’ 님께서 수원 행궁동 칼국수 맛집은 ‘대왕 칼국수’일 거라고 제보해주셨어요. “꼬부랑 할머님께서 5,000원밖에 안 하는 가격에 칼국수를 한 사발 내주시는데요. 자주 가는 게 미안해지기까지 하는 곳이라 가끔 한 그릇 먹고 만 원 내고 올 때도 있어요.”라고 하시네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원에 가게 된다면 저도 꼭 가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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