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에 저는 핀란드에서 오신 기자님을 만났습니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낸 다음 몇 번 외신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아무래도 한국의 출생율이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중이기 때문이겠지요. 한국의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가임기간인 15~49세 사이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2018년 처음으로 1명 이하인 0.98명으로 떨어진 이후 지난해 0.81명으로 꾸준히 하락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통계청의 예측에 따르면 올해는 0.77명까지 줄어들 거라고 하네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저는 한국의 저출생이 어떤 배경과 연관된 문제인지 짧게나마 잘 설명해보려 애쓰곤 합니다. “한국은 여성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 위해 너무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사회다. 양육에 공백이 생기거나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해야 하는 것은 대개 엄마이기 때문에 여성이 커리어를 유지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다. 아이를 키워내는 데 드는 비용도 문제지만, 여성과 아동에게 적대적인 문화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원하지 않게 된다.” 같은 이야기죠. 하지만 여기에 꼭 덧붙이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의학의 발전으로 안전한 피임과 임신중지가 가능해진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여성들이 과거보다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에게는 엄마가 되지 않기로 한 ‘특별한’ (<헤어질 결심>의 대사에서 빌려오자면 ‘단일한’) 이유가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절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뚜렷한 입장을 가진 건 아니었어요. 엄마 됨에 대한 로망은 없는 편이었지만, 연애 시절에는 이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면 어떨까 상상한 적도 있습니다. 아주 좋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결혼 후 시간이 흘러도 내 삶에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삶이 여기에 있는데,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아닌 길로 굳이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저는 이쪽 삶에 머무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다수가 선택하지 않는 길을 ‘굳이’ 가는 것도 무척이나 마음이 부대끼는 일이더라고요. 내가 문제인가? 나중에 후회할까? 10년 뒤에는? 30년 뒤에는? 우리 부부는 괜찮을까?

나중에 저는 진 세이퍼라는 미국의 정신분석가가 쓴 글에서 그때의 제 마음에 가까운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아이를 갖고 싶은 것이 아니야.

아이를 갖길 원하는 마음을 원하는 거야.”

(『나는 아이 없이 살기로 했다』 메건 다움 엮음, 218쪽)

결국 이런저런 이유에 앞서, 저 역시 진심으로 아이를 갖고 싶은 사람은 아니라서 엄마가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국이 아이를 낳거나 키우기에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든 ‘그냥’ 아이를 원하지 않는 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욕망은 각자 다른데, 모든 여성이 아이를 원한다는 것이야말로 부자연스러운 일 아니겠어요?

이 뻔한 이야기를 처음에는 저조차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만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건 더욱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그동안 제게 들려준 이유들을, 그것이 저와 같지 않더라도, 어쩐지 전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삶에 다른 비중과 의미로 얽혀 존재하는 수많은 이유 중 이상하거나 사소해 보이는 건 하나도 없었거든요.

오늘의 사진은 이 계절에 꽃을 피우는 식물, 원추리입니다. 근심을 잊게 한다는 의미의 ‘망우초’라는 별명이 있다고 해요. 더위, 장마, 코로나19 재유행까지 걱정거리 많은 여름이지만 무사히 잘 지내시면 좋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