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래 전 임신·출산·육아를 시작해 15년째 하고 있는데요. 이 세월이 하도 길다 보니 문득문득 이 삶이 나고 내가 아이들이고,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좀 서글프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 주변에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보다 결혼하지 않았거나 결혼했어도 아직 아이가 없는(가질 계획은 있는) 지인들이 훨씬 많습니다.

어느 날 딩크족 이야기가 나왔는데 결혼하지 않은 지인 하나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딩크족이라고 하지만, 결국 스스로 아이를 가질 수 없거나 키울 수 있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니까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하는 척하는 것 같다.”라고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주변 케이스를 보면 몸이 너무 약해서 애를 못 갖거나, 가져도 낳기 무리이고 키울 돈도 없고 환경이 안 되니까 아이를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지만 자기 생각에는 모든 여자는 아이를 낳고 싶을 거라고, 그게 본능일 거라고 하더라고요.

안타까운 것은(?) 저는 이미 임출을 끝낸 여성이기에 ‘못’한다는 그 느낌이 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딩크는 명백한 의지적 행동으로 보이거든요.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어떠한 부분이 비정상이기에 못 낳는 것이다.” 그럼 그 모든 조건이 해소되면 모든 여성은 아이를 낳는 걸까요. 여성의 ‘정상적인’ 상태는 무엇일까요.

- J]

‘3포 세대’라는 말이 유행한 지 10년 이상 지나면서 연애, 결혼, 출산하지 않는 것을 ‘포기’라는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아요. 실제로 아이를 갖지 않는 데 경제적 문제가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하니, J 님의 지인처럼 누군가는 무자녀 부부에 대해 능력이 없어서 아이를 못 갖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자주 본 말 중에는, ‘남자가 아이를 원하는 건 본능이기 때문에, 딩크를 원하는 건 가난하고 무능력한 남자뿐이다’라는 내용도 있었거든요. 비슷한 맥락에서 ‘여자가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건 본능이기 때문에, 딩크라고 말하는 여자들은 알고 보면 다 난임이다’라고 일반화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안 갖는 것이 아니라 못 갖는 거라고 주장하는 거지요. 이런 주장의 근거는 대개 ‘내 주변 케이스’이고, 그 주변인에 대한 사적인 감정 및 뒷담화 욕망이 뒤섞여 있습니다. 

경제력이나 생식 능력을 떠나, 아이를 원하지 않는 부부 관계 그 자체에 결핍이나 비정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어하는 말도 흔하게 떠돕니다. “부부 사이가 좋고 결혼 생활이 행복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고 싶어진다”라는 말은 완곡하게 무자녀 부부의 불행을 전제하고, 무자녀 부부의 유튜브 영상에 “여자가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싸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자기 남자의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게 정상이다” 같은 내용의 댓글을 길고 정성스레 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개개인의 비출산에 관한 다양한 맥락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피곤하기도 하고 꼭 필요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자기 마음 속에서 결론내린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거니와, 그가 굳이 그런 주장을 펼치는 바탕에는 실제 무자녀 부부의 삶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둘러싼 욕망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을 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런 말들에 담긴 악의가 점점 크게 멀리 퍼져나가 사람들에게 괜한 상처를 주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저도 가끔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낳아 키울 ‘능력이 없는’ 사람들인지에 관해서요. 저와 배우자는 프리랜서 글쓰기 노동자인데, 두 사람의 수입을 합쳐도 비슷한 또래 대기업 직원 한 명의 연봉에 훨씬 못 미칠 겁니다. (이럴 때 비교 대상이 꼭 대기업 다니는 사람일 필요가 있나 싶기는 합니다만.) 40대가 경제 활동이 가장 활발한 나이라고 하던데, 저희의 소득이 40대 평균보다 한참 낮은 것 같아서 자세히 찾아보지 않기로 했어요. 어차피 평균이라는 것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의 총합을 나누어서 내는 거니까, 저희는 거기서 조금 낮은 소득 구간에 위치한 사람이겠지요.

그런데 만약 저희가 꼭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면 지금보다 돈을 더 열심히 벌었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한 명이라도 직장에 다니며 정기적인 수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겠지요. 하지만 둘 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지금의 삶이 꽤 마음에 들고, 심지어 저는 비생산적 일상에 대한 자괴감으로 별별 삽질을 할지언정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만은 들지 않았기에 계속 이렇게 살기로 한 것입니다. 포기는 원하는 것, 하려던 일을 그만둘 때 쓰는 말인데 저는 출산과 육아를 그렇게 원한 적도, 시도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고작 저 하나의 반례만으로도 무너지는 ‘모든 여성의 본능’이라는 기준은 얼마나 허술한 것일까요. 물론 혹자는 저같은 여성을 싸이코패스로 분류하겠지만요...

지난 주말 저는 좋아하는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공개방송에 출연했습니다. (이 소식을 ‘없는 생활’에서 알려드리는 걸 깜빡해서 뒤늦게 후회했어요.) 그리고 제 기준에서는 상당히 높은 출연료를 받아서 무척 기뻐한 다음, 제가 후원하는 여성단체에 보냈습니다. 요즘 여러 시민단체가 기금 마련을 위해 애쓰는 시기거든요. 그래서 잔고는 다시 플러스 마이너스 0이 되었지만, 제가 삶에서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게 있다면 딱 요만큼의 여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처서를 지나고 조금 서늘해지면서 9월이 시작되었네요.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장 반가웠던 건 김규진·김세연 부부의 딸 출산 소식이었어요.

두 명의 엄마와 아이라는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 우리 앞에 등장한 시대에, ‘정상’이라는 개념 또한 점점 힘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