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연예인 부부에 대한 관찰 예능 <동상이몽 2 – 너는 내 운명>을 보았습니다. <골때리는 그녀들>의 개벤져스에서 ‘적토마’로 활약 중인 코미디언 김혜선 씨와 독일인 남편 스테판 지겔 씨가 출연한 날이었어요. 이날 김혜선 씨는, 사실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터프한 성격도 아닌데 과거에 방송을 위해 근육질에 과격한 캐릭터로 활동하다가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일을 모두 그만두고 독일로 떠날 때도 “죽으러 간다”라는 마음이었는데, 그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요.

그런데 이 방송에서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해 아들 부부의 집에서 함께 지내던 스테판 씨 부모님의 말씀이었어요.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언젠가 결혼하면 가족을 풍성하게 꾸리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는 김혜선 씨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아기를 가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스테판 씨는 연애 시절 이미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입장이 엇갈릴 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부모나 시부모의 반응은 어떤 걸까요? 조상님 볼 낯이 없다며 아들의 등짝 후려치기? 네가 더 현명하게 설득해보라고 며느리에게 잔소리하기? 압력이 어느 쪽을 향하든 ‘어쨌거나 아이는 있어야 한다’라고 믿는 어른들의 반응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죠.

그러나 스테판 씨 부모님의 반응은 일단 두 사람의 대화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김혜선 씨가 시어머니 베로니카 씨에게 “저는 아기를 갖고 싶은데 스테판은 원치 않아요”라며 하소연하자, 베로니카 씨는 우선 “굉장히 뜨거운 주제구나.”라며 이 주제가 논쟁적일 수 있음을 짚습니다. 김혜선 씨가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다시 도움을 요청하자 베로니카 씨와 시아버지 군터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영상 클릭)

베로니카: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군터: 너희들 문제에 우리 생각을 섞을 수는 없어.

베로니카: 물론 우리는 손주가 있으면 너무 좋겠지만, 2세 계획은 부부가 결정해야 할 문제지 제삼자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이때 VCR을 보던 스튜디오 패널들 사이에서는 “우와, 쿨하다!”, “오히려 ‘제삼자’라고 했어!” 등 놀랍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김혜선 씨가 어플리케이션으로 부부의 사진을 합성해 만드는 ‘미래의 아이’ 이미지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다시 “너무 귀엽다!”, “무조건 낳아야겠다!”라는 멘트가 쏟아집니다. “얼마나 예쁘겠어요?”라며 아이를 기대하는 김혜선 씨, “사진이 예쁘네. 벽에 걸면 되겠다.”라고 말 돌리는 스테판 씨와 달리, 베로니카 씨와 군터 씨는 흐뭇한 얼굴로 사진을 보면서도 굳이 말을 얹지 않습니다. 급기야 김혜선 씨가 “보통 한국에서는 결혼하면 시부모님들이 2세 가지라고 하기도 (해요).”라고 덧붙일 때조차도요.

제작진은 이 대목에서 한국의 ‘막장 드라마’ 한 장면을 예시로 삽입합니다. 외출에서 돌아온 시어머니가 거실에 모여앉은 가족들을 향해 “한약 한 재 지었어요. 이제 슬슬 둘째 손주 봐야지.”라고 선언하듯 말하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쏘아보는 장면을 ‘기싸움’이라고 명명하면서요. 이런 전개는 극적 과장일 수 있지만, 아들과 결혼한 여성을 ‘X씨 집안의 대를 이어줄 몸’이나 ‘우리에게 당연히 손주를 안겨줄 몸’으로 취급하며 출산 시기, 성별, 숫자까지 자신들이 간섭 및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시월드’ 사례는 적어도 저와 제 윗세대에서는 그리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보다 아랫세대 기혼 여성들이 마주하는 ‘시월드’도 대단히 달라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미디어에서는 이를 ‘고부갈등’이라는 프레임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는 여성의 재생산권과 원 가족으로부터 부부의 독립 등 훨씬 복잡한 가족 내 권력, 그리고 불평등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결국, “제발 한국 부모님처럼 얘기해주세요.”라는 김혜선 씨의 애원에 군터 씨는 잠시 망설이다 도돌이표처럼 답합니다. “너희 둘이 결정할 문제니까 내가 많이 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가장 중요한 건 둘이 잘 의논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거야.”

공교롭게도 저는 최근 “한국 종가 자부심 이어줄 姓氏별 정자은행 생긴다면”이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난임전문의의 또 다른 글을 읽었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아이 없이 반려동물을 키우며 사는 부부인 ‘딩펫족’을 비판하며 말합니다. “20년도 채 살지 못하고 곁을 떠나는 반려견, 반려묘를 어찌 자식에 견줄 수 있으랴. 정부와 기업은 물론이고 시니어들도 젊은 부부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식을 낳아 키우며 느끼는 행복감과 보람’에 대해 끊임없이 설파해야 할 것이다.”

글쎄요, 젊은 사람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식 낳아 키우며 느끼는 행복감과 보람’에 대해 떠드는 시니어들은 지금까지도 차고 넘치게 많았지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게 되었나요? 너무나 다양한 이유로 한국의 젊은 세대는 점점 더 결혼을 안 하고 출산을 덜 합니다. 올 연말이 되면 한국의 출생률은 0.7명대에서 더 떨어져 0.6명대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그런데 <동상이몽 2> 제작진이 아들 부부의 출산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을 때 베로니카 씨가 들려준 이야기야말로 이 주제에 관한 우문현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로니카: 당연히 아이는 없어도 됩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있고 없고에 따라 둘을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두 사람의 부모로서 저희가 가장 기쁜 일은 함께 결정 내리는 걸 지켜보는 거죠. 그래서 둘의 결정에 의견을 보탤 수 없어요.

부모의 자식을 향한, 혹은 기성세대의 다음 세대를 향한 신뢰, 사랑, 존중이 담긴 그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만약 우리 사회에 이런 어르신들이 좀 더 많아진다면 젊은 사람들 역시 좀 더 나은, 다양한,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거기선 지금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살아가게 될 수도 있겠죠.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