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1년이 채 안 된 35세 여성이에요. 자발적으로 '없는 생활'을 택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늘 반가운 마음입니다. 저는 없는 생활을 하기로 완전히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제 마음을 천천히 가만히 들여다보는 중이에요.

제가 아이 없는 삶을 생각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좁혀지더라고요. 첫째는,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삶을 꼭 살아 볼 만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이미 태어났으니 살아가고 있지만 스스로 이 삶을 끝낸다는 생각을 몇 차례 진지하게 해 보았고, 여러 이유와 도움으로 지금은 그 생각을 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근본적인 인생관은 쉽게 변하지 않더라고요. 그런 제가 누군가에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삶을 안긴다는 것이 맞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 거지요. 나랑은 다르게 삶을 기꺼워하는 존재가 태어날 수도 있는데, 모든 가능성을 제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일종의 교만일까요? 제 우울과 불안과 비관이 아이를 망칠까 봐 걱정되기도 해요.

둘째는 미디어에서 수없이 이야기하듯 먹고살기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첫째 이유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겠네요.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자랐고, 지금은 안정적으로 노동하고 있지만 저나 남편이나 벌이가 좋은 편은 아니에요. 직장은 둘 다 서울이지만 경기도에서 통근하고 있고요.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든 책임지며 살려고 애쓸 테고 그렇게 살아지겠지만, '살아진다'의 행간에 얼마나 촘촘한 근심과 미안함과 불안과 시기와 노력이 있는지 저는 너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누가 뭐래도 나는 느끼는 실존적인 공포니 헤아려야 한다 싶다가도, 결국 경제적인 이유로 낳지 않기를 선택한다면 서글플 것도 같아요. 사는 데 경제적인 게 정말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믿기도 하니까요. 모순덩어리지요?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삶에 별다른 의문이 없는 편이라 어디엔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었어요. 남편과도 이야기하긴 하지만, 익명의 힘을 빌어 불특정 다수에게 묻고 싶은 날이 있으니까요. 그런 창구가 되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덧붙입니다.

덧, 작가님 덕질 이야기도 해주세요...ㅎㅎㅎㅎㅎ

여러분이 ‘<없는 생활>에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글을 보내주실 때마다 무척 반가운 마음으로 읽곤 합니다. 저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종종 계시지만, 저야말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큰 감사함을 느낍니다. 아이 없는 삶이나 이 삶을 둘러싼 망설임은 너무나 개인적인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맥락과 깊게 연관된 것이다 보니 찬찬히 솔직하게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야야 님처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에 계신 분에게 이미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람들이 “고민되면 낳아야 한다” 같은 말을 진리인 양 쏟아내며 재촉하는 광경을 볼 때마다 무척 답답해집니다. 또 한편으로 ‘확고한 딩크’를 자처하는 분들이 “찐딩크는 당신처럼 고민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하며 밀어내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거의) 없었는데도 몇 년에 걸쳐 온갖 고민을 다 하고 나서야 비교적 ‘확고해진’ 저는 그처럼 확신에 찬 말들이야말로 불필요할 뿐 아니라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엊그제 통계청에서 내놓은 2023 인구 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으로 또다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고 합니다. 10~20대 사이에 유행처럼 퍼진 ‘낳음 당했다’라는 표현은 이미 부모가 된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아직 부모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야야 님께서 그러하시듯, 요즘 우리 사회에는 태어날 아이의 삶을 생각하면 낳고 싶지 않다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삶이 너무나 피로하고 불안한 데다 미래에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품기도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데이비드 베너타라는 철학자의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존재하게 되는 것의 해악’이고, 베너타는 철학적 논증을 통해 반출생주의를 지지합니다. 반출생주의에서는 아이를 낳아서 경험하게 되는 괴로움은 처음부터 아이를 낳지 않으면 경험하지 않을 일들이라고 설명하며, 아이를 낳지 않아서 경험하지 못하는 즐거움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기쁨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해서 좋지 않은 일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는 없는 것이 낫다는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미 태어나 살아가는 인간이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인생을 시작할 가치와 지속할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삶은 꼭 살아볼 만한 것인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세상에 불만이 많은 사람치고는 은근히 낙천적이거든요. 삶이 고통이라 여기지만은 않고, 이 삶을 끝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오래전 일이라, 지금은 그럭저럭 행복한 때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이를 갖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그냥 이 정도의 행복을 유지하고 싶어서기도 합니다. 저는 나름대로 운이 좋았던 편이라 생각하는데, 제 아이는 그렇지 못하다면 아이를 둘러싼 수많은 불확실성은 제 행복을 뒤흔들 위험요소가 될 테니까요. 게다가 그 ‘운’을 구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부모님의 책임감과 헌신이었음을 고려하면 저는 이 결정에서도 아이의 입장보다도 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 적절한 말씀을 드리지 못할 것 같기도 해요. 다만 야야 님께서도 말씀하셨듯, 태어날 존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는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열어두시면 어떨까 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그보다 더 직관적인 어려움이죠. ‘딩크족은 돈 잘 벌어서 부부가 맨날 같이 골프 치고 해외여행 다니더라’ 같은 얘기를 들을 때마다 쓴웃음 짓는 저 역시 올해는 어떻게 넘길 수 있을지, 5년 뒤에는 뭘 먹고 살지 문득문득 두려워집니다. 만약 ‘살아진다’의 행간에 내가 책임지고 키워내야 하는 아이의 존재가 있다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더욱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대로, 사는 데 경제적인 게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요. 이 삶을 선택해서 돈 걱정을 조금 덜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러울 때도 있지만, 오직 돈 때문에 이 삶을 선택한 건 아니니까요. 미디어나 정책 등 공적 영역에서 무자녀 결정은 경제적 요인으로 환원되고 해석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이런 마음을 저는 모순이라기보다 우리 삶에 존재하는 필연적인 복잡성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좀 더 정리해보고자, 저는 이번 학기에 ‘자발적 무자녀 기혼 여성’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을 쓰기 시작합니다.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여성의 이야기는 저의 중요한 관심사이자 연구 주제이기에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혹시 인터뷰 참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삼일절입니다. 저는 9년 전 오늘 결혼했는데, 사회자께서 하객들에게 만세삼창을 외치게 하셔서 웃음바다가 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시간이 정말 빨리도 흐릅니다.

꽃샘추위 조심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추신 1. 저의 덕질 이야기는 어쩌면 언젠가 본격적으로…….

추신 2. 얼마 전 셀럽 맷 님의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292화 ‘이상한 나라의 부모님 제8탄’ 편에 <씨네 21> 이다혜 기자님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자식들이 쓴 천하제일 이상한 부모님 자랑(?)대회 같은 이 방송, 다른 집 부모님은 얼마나 어떻게 이상한지 궁금하시다면 한 번 들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