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배우자는 개신교인입니다. 저희는 구체적으로 결혼을 준비하기 전부터 무자녀로 살기로 합의, 내지는 서로의 같은 생각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천주교 포함 온 기독교에서 자녀를 낳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시되는 것이라 역시 개신교인인 부모님과 배우자의 형제에게도 구체적으로 공유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니 양가 부모님께서 2세 계획을 물으시고 재촉하세요. 다행히 고부·장서 갈등까지는 아니고 당신의 자녀들만 닦달하시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하지만 개신교 사회에서 신혼부부의 자녀는 가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 내 이런저런 봉사나 사교 관계를 맺다 보면 부모님 세대 교인들도 계속 2세 계획에 대해 질문합니다. 최근은 매주 뵙는 여성분께서 “임신했어?”로 인사를 대신하셔서 해당 모임의 모임장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네요. 다른 분으로부터는 빠른 임신을 위해 회개 기도를 하라는 취지의 말을 듣고 경악스러운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를 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네가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너의 죄 때문이 아니냐는 거죠. (제가 너무 비약해서 이해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상황은 아니지만, 어쩌면 난임 같은 사정을 오픈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젊은이가 있을 수도 있는데 저렇게 접근한다면 개인에게도 큰 상처가 되고, 안 그래도 젊은 세대가 없어 큰일이라는 개신교 사회에서 더 젊은 세대들을 잃지 않을까, 걱정되었답니다.

지금 개신교 내에서 많이 나오는 담론은 정치와 종교의 연관성이나 차별금지법 반대 같은 주제들이지요. 그런데 저는 개신교 내 딩크 부부들을 어떻게 품고 혹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도 꼭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역시 어딘가 쉽게 털어놓기 힘든 문제기에 여기 담아봅니다.

잔챙이님이 보내주신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선 여기에 털어놓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답장을 써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저는 신앙을 가져본 적이 없거든요. 머리로 생각하면 당연히 저런 말과 침범을 견딜 필요 없으니 거기서 벗어나면 그만이라 해도, 일종의 마음의 뿌리를 둔 공동체를 떠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그 마음을 잘 모르는 제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그런데 마침 최근 기독교인 무자녀 여성 두 분을 만나 이와 관련된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개신교인이신 A님도 잔챙이님과 비슷한 경험을 하셨더라고요. 나이와 혼인 기간을 물은 다음 “기도를 해줘야 하는 상황인지” 묻는 식의 느닷없는 개입은 교회에서 드문 상황이 아닌 것 같더군요. A님은 결혼 전 교회라는 커뮤니티 안에서 좋은 관계를 맺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그것을 계속 누리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기분이 들 때 생각이 복잡해진다고 말씀하셨어요.

가톨릭 신자이신 B님과는 예전에도 무자녀 삶과 종교에 관련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 여러 가지 말씀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B님의 허락을 받아 이날 들려주신 말씀을 정리해 공유합니다.

[가톨릭에서는 혼인성사를 할 때 “주님이 주신 생명을 소중히 받아 성가정을 이루겠습니까?”하면서 출산 여부를 묻는 구간이 있어요. 그런 질문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고 ‘왜 이걸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단 “네”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그 후로 번민에 휩싸였어요. 기독교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의 세계를 ‘창조 보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고, 거기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도 포함되거든요. 고민하다 신부님께 면담 고해를 신청했죠. 그런데 다행히 신부님이 제 삶을 이해해 주시고 자매님은 다른 방식으로 창조 보전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저에겐 그게 큰 힘이 됐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이상 죄의식을 갖지 않게 되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도 그 전에 성당에서 아이가 없는 부부를 본 적이 없어요. 겪어보니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어떤 이유로든 아이가 없는 부부는 ‘성가정’ 상에 맞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니까 성당에 나오는 게 힘들었겠죠. 그러니까 제가 더 열심히 나가서 다른 케이스도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저는 성당에 오래 다니면서 너스레가 좀 늘었거든요. 이제 아이 낳으라는 얘기 들으면 “요즘 그런 말씀 막 하시면 안 돼요~”하고 받아치기도 하고, “아이 생기라고 기도해 줄게” 하시는 분에게는 “아니, 그냥 저희 잘살라고 기도해 주세요.” 그러죠.

하지만 그와 별도로, 내 종교 안에서 이런 감정이나 가치관을 공유하고 다양성을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일도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세속성자 북클럽’이라는 모임이 있거든요. 그런 곳은 기존의 교회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계 맺기를 고민하며 만든 거죠. 제 경우에는 가톨릭 청년성서모임에 참여한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이 모임은 전국에 있으니까 제가 다니는 성당에서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도 다른 청년들과 나눌 수 있거든요. 누군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때 내 경험을 들려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힘이 돼요.]

신앙을 갖는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여전히 종교가 의미 있는 이유는,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게 해주고 위로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막연히 짐작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공동체가 계속해서 내 존재에 대한 불안을 더하거나 누군가를 배제한다면 그 공동체는 근본적인 지점에서 실패하고 있는 거겠죠. 이와 관련해 종교 공동체 구성원들, 그중에서도 특히 목회자와 교단의 적극적 성찰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삶에 관한 환대야말로 더 많은 사람을, 더 오랫동안 그 공동체에 머무르게 하는 힘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아이 없이 살아가는 분들이 편안하게 믿음의 뿌리를 내릴 곳을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벚꽃이 피기 시작했는데 비바람이 오락가락하니 초조해지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이번 주말에는 어디에서든 꽃을 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