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베스트셀러였고 SNS에서도 화제였던 <도둑맞은 집중력>을 저는 읽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을 만한 집중력이 없었거든요.

‘산만하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를 만큼 어렸을 때부터 저는 산만했습니다. 통지표에 대체로 덕담만 적어 주셨던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께서도 마지막에 “~하지만 조금 산만함”이라고 콕 짚어주셨던 걸 보면요. 그 후로 오랫동안 제 안에서 자라오던 산만함이 제대로 만개한 건 역시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서였죠.

특단의 조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지난 1월, 졸업시험을 사흘 앞뒀을 때였습니다. 절벽 끝에 선 심정으로 ‘금욕상자’를 검색했어요. 작년 여름 <나 혼자 산다> 코드쿤스트 씨의 디지털 디톡스 편에 그런 아이템이 등장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거든요. 

만 원 이하의 제일 싼 제품부터 살펴봤습니다. 창살로 둘러쳐진 유치장처럼 생긴 작은 상자에 자물쇠가 달린 형태였어요. 그런데 

“그냥 열쇠로 열면 되니 무용지물이더라고요. ⭐⭐⭐”

아무래도 제 손에 열쇠가 있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격이니 타이머 형태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포레스트’ 앱에서 타이머 맞췄다가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들어가느라 자라나는 나무를 죽인 게 한두 번이 아니라 강제력은 필수였고요. 

스마트폰보다 조금 큰 케이스 안에 폰을 집어넣고 타이머를 맞춘 뒤 잠그면 되는 제품이 괜찮아 보였습니다. 가격대도 다양했는데 대부분 중국 직구 제품이라서인지 상세한 사용설명서가 실려 있지 않은 데다 후기조차 거의 없어 기계치인 저는 불안해졌습니다. 상품 페이지를 보느라 꽤나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야 깨달았죠. 지금 주문해도 시험 전날 도착하겠구나! 그래서 일단 금욕 프로젝트는 미뤄졌고, 저는 몇 달간 또다시 헛된 시간을…….

이대로 살다가는 논문이고 뭐고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어느새 4월 초였습니다.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어서 뚜껑에 달린 버튼을 돌려 시간만 맞추면 되는 투명 플라스틱 상자를 4만 얼마에 구입했어요. 코드쿤스트 씨가 방송에서 사용한 제품인 덕분에 후기와 정보가 많았거든요. “망치로도 부수기 힘든 케이스.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파손으로 인한 AS는 처리 불가능합니다.”라는 설명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습니다.

택배를 풀어본 첫인상은 ‘크다….’였어요. 간식이나 담배, 게임기 등을 넣는 것까지 고려해서인지 제 책상 위 쓰레기통보다 커서 스마트폰 열 대도 훨씬 넘게 들어갈 것 같더라고요. 비장한 마음으로 건전지를 넣고 시험 작동을 해보았습니다. 바라던 대로 조작은 간단하고 상자는 튼튼했습니다.

한 달 후,

지금 제 금욕상자에는 안약, 클립, 설명서, 프린터 잉크, 목 아플 때 먹는 사탕 등 책상 위 온갖 잡동사니들이 들어 있어요. 스마트폰은, 한, 한…열 시간 정도 들어갔던 것 같네요. 아니 근데 진짜(이거 없이 말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 제가 그러려고 그랬던 건 아니고, 이 상자에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한계가 있더라고요.

첫째, 금욕을 실천하려면 상자 가까이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몇 년 전부터 거실 소파 왼쪽 끝에 앉으면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저주에 걸려 있습니다. 최근 알게 됐는데, 제가 이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벽 콘센트에 2미터짜리 스마트폰 충전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어요. 폰을 충전하는 동시에 무한히 볼 수 있다는 안락함이 저의 집중력을 훔쳐가는 사이 제 방 책상 위에 있는 금욕상자에 다가가지 못했던 거죠. 그렇다면 일단 소파에서 도망쳐야겠다 싶어 요즘에는 도서관에 갑니다. 문제는 금욕상자가 휴대하기엔 너무 큰 데다, 잠기고 열릴 때 나는 ‘지이잉-’ 소리 때문에 조용한 공공장소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금욕을 실천하려면 상자에 스마트폰을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스마트폰에 중독된 사람은 잠시도 손에서 폰을 놓을 수 없습니다. 마치 <분홍신>의 주인공이 숨이 끊어질 때까지 춤을 추듯, 스마트폰에서 손가락을 떼지 못한 채 5초에 한 번씩 새로 고침하고 SNS와 커뮤니티를 돌며 온갖 파편적인 정보로 도파민 샤워를 하고 단톡방에서 친구들과 수다떨고 인스타 스토리를 올리고 하트를 확인하고 댓글을 달고 답글이나 좋아요에 반응하고 딱히 입금될 일도 없는 통장 계좌를 체크하길 n번 반복하다 보면 몇 시간이 그냥 녹아 사라집니다. 물론 금욕상자를 사기 전에 앱 사용시간 제한 기능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설정 시간을 제가 바꿀 수 있으니 역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 자꾸 비교하기에도 고양이에게 미안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자를 괜히 샀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마감이 코앞에 닥쳤을 때 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탄을 처리하듯 스마트폰을 황급히 던져넣고 잠가버린 다음 일을 마칠 수 있거든요. 그렇지 않을 때는 40분 넣었다가 꺼낸 뒤 한 시간 웹서핑하기 따위로 비효율의 극단을 달리긴 하지만, 폭주하는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하나라도 있다는 사실이 최소한의 심적 안정감을 준달까요. 

문득 얼마 전에 본 네 컷 만화가 떠오르네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만 붙들고 있던 토끼가, 핸드폰 좀 그만 보라고 잔소리하는 상대에게 “내 손가락 좀 잘라줘!”라고 울며 외치는 내용이었어요. 스마트폰을 꼭 쥐고 놓지 못한 채 “나도 그만 보고 싶어!”라고 부르짖는 토끼가 남 같지 않더군요. 전 요즘 드디어 일이나 공부할 때만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볼 때도 안경을 끼기 시작했거든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