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받으셨던 편지를 아직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결혼과 출산은 동의어일까?’라는 질문과 함께 이런 말씀을 드렸지요. “저는 결혼이 그 자체로 영속성을 갖거나 절대 깨뜨릴 수 없을 만큼 신성한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만약 나는 여전히 아이를 원하지 않고 상대는 시간이 흘러도 계속 아이를 원한다면 그때 헤어져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보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없는 생활> 페이지에 한 통의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저는 결혼 3년 차로 결혼 후 점점 비출산 의지가 강해진 사람입니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아이를 원했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는 남편도 당장은 아이 생각이 없으니 시간을 갖고 천천히 고민해보자 했습니다. 저도 당시엔 마음을 완전히 닫아둔 게 아니라 수긍했고요. 그러나 요즘은 입장 차가 점점 벌어지는 중이에요. 문제는 두 사람 다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주장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저는 결혼 전보다 비출산에 마음이 확 기울어 있지만, 여전히 제가 그것을 원하는지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없어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이유를 얼마든지 댈 수 있는데도요. 남편은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할 뿐 왜 아이를 갖고 싶은지, 왜 부모가 되고 싶은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저 본능인 것처럼 말해요. 요즘 들어 이 문제로 남편과 의견 차이가 잦았고 저는 헤어질 생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굉장히 실망했어요. 출산과 육아를 해보지도 않고 거부부터 하는 제 태도도 실망이지만, 갈등을 해결할 수단이 이혼인 것도 실망이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아예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들고 자주 무기력합니다. 제 마음을 제가 완전히 알지 못해서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결혼 후에 합의점을 찾지 못해 이혼까지 생각하시는 다른 분들의 의견이 더 궁금했습니다. 남편은 “내가 다 포기하고 살게, 힘들겠지만.”이라고 말한 상태지만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의 상황, 현실에서는 이런 제 고민이 더욱 사소하게 느껴지지만 용기 내어 목소리 남기고 가겠습니다.

이 목소리를 남기기까지 얼마나 깊은 고민을 하셨을지 생각하니 저도 얼른 답장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혼이라는 문제와 직면해본 적이 없는 제가 과연 도움 될 만한 말씀을 드릴 수 있을지 걱정하기도 했어요. 고민이 님의 이야기를 종종 떠올리며 고민하는 사이 한 달이 훌쩍 흘렀습니다. 그동안 자주 떠오른 것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쓰기 위해 진행했던 첫 번째 인터뷰였어요. 책에도 소개했지만, 저는 인터뷰이 승주 님에게 “혹시 아이가 없어서(아이를 원하지 않아서) 배우자와 헤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신 적 있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은 제가 갖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때 승주 님은 아주 밝고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이가 없어서 남편이 나를 떠나거나 헤어지게 될 수도 있다는 부담감은 별로 없어요. 정 그렇게 원하면 이혼하고 가지시던가!”

그 거침없는 말투에 함께 웃음을 터뜨리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제가 바로 그런 해방감을 기다려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결혼까지 해놓고 아이를 안 낳겠다는 건 계약 위반이니 그런 여자는 이혼당해 마땅하다!’라며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에서, 단지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이혼할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여성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얼마 전 온라인에서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더니 아이도 안 갖겠다고 한다’라는 내용의 글을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반응은 여성에 대한 비난이었고, 여성 커뮤니티에서조차 ‘아이를 안 가질 거면 결혼 전에 말했어야지’라는 반응이 다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딩크는 결혼 전에 확실히 말하고 합의해야 하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그렇게 해야 양쪽 모두에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의문이 듭니다. 결혼해 보신 분들은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결혼 생활의 많은 부분은 예상과 다르게 펼쳐집니다. 큰 갈등 없이 서로 맞춰갈 수 있는 정도라면 운이 좋은 편이지만 생활 습관 및 가치관 차이, 경제적 문제, 원가족 문제, 건강 악화, 커리어 변동, 주거 환경 변화 등 타협이나 해결이 무척 힘든 문제도 있죠. 자신이나 배우자가 양육에 적합하지 않음을 깨닫고 아이 없이 살기를 결정하는 사람들도, 두 사람만의 가정이 충분히 만족스러워 그 균형을 깨고 싶지 않아서 같은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 상당수는 결혼이라는 법적 절차를 밟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파악할 수 있는 정보입니다.

승주 님 역시 결혼 초에는 ‘그래도 결혼했으니 낳아야겠지’라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하지만 1년 정도 시간이 흐르며 일과 출산·육아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비출산을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막상 결혼해 보니 애를 낳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그게 그 사람 개인의 잘못이 아니에요. 결혼 생활의 환경,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 상대, 시댁 문제 같은 게 복합적으로 연결돼서 ‘아, 여기서 나를 지키려면 낳지 말아야겠다’라고 결정할 수 있는 거죠. 자기 몸에 대한 권리잖아요.”

저는 “그게 그 사람 개인의 잘못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고민이 님께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고민이 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알지 못해서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모든 사람이 결혼 전부터 출산/비출산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그랬고, 천천히 고민한 결과가 지금이거든요. 결혼 전 두 분이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자고 하신 건 말 그대로 ‘천천히 생각해보자’라는 것일 뿐,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를 원하는 쪽으로 흘러가길 기대할 수 있었던 일은 아니지요. 고민이 님께서 점점 비출산으로 마음이 기우셨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고, 어떤 이유라도 사소하거나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민이 님의 몸이고, 고민이 님의 삶이니까요. 그리고 자신이 비출산을 원하는지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없으시다 해도, 그 역시 고민이 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살면서 우리가 하는, 하지 않는 많은 일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백 퍼센트인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유독 다수가 선택하지 않는 길에 대한 마음에만 무결함과 백 퍼센트의 확신이 요구되곤 합니다. 타인뿐 아니라 가끔은 우리 자신도 스스로에게 그렇게 요구하는 건 아마 일종의 불안과 고립감 때문일 것 같아요.

고민이 님께서 느끼실 고립감의 원인 중 하나는 이 갈등 국면에서 드러난 남편 분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신은 왜 부모가 되고 싶은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출산과 육아를 해보지도 않고 거부부터 하는 태도가 실망”이라니, 출산과 육아는 한 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둘 수 있는 체험판이 아닌걸요. 도중에 일방적으로 멈출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배우자가 이토록 무겁게 고민해왔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사람이, 과연 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좋은 양육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저는 서로 원하는 삶의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배우자에게 실망이라고 말하는 태도야말로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고민이 님이 약속을 어기거나 배신하거나 손해를 끼친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몸과 삶을 어떻게 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니 남편분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고민이 님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계속 함께 살기,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고민이 님이 제안하신 대로 헤어져서 자신과 같은 형태의 가정을 원하는 새 파트너를 찾기. 전자라면 “내가 다 포기하고 살게, 힘들겠지만.” 같은 말은 하지 않아야 하고, 후자라면 이혼이라는 해결책에 실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 이혼에 직면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저는 이와 관련된 아주 복잡한 감정과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는 평균수명이 이다지도 길어진 인간의 삶에서 한 사람과 길면 50년 이상 함께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 아닐까 종종 생각합니다. 서로의 욕망과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혼자 살아가는 게 더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 같기도 하거든요. <오은영 리포트 - 결혼 지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헤어지는 게 서로에게 훨씬 좋을 것 같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억지로 봉합하려는 시도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죠. 아이의 존재는 많은 사람이 이혼을 피하고자 하는 중요한 이유지만, 아이가 없는 두 사람의 성인이 헤어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조금 덜 복잡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고민이 님께 필요했던 답을 제대로 드리지는 못한 것 같은 채로 편지가 꽤 길어졌습니다. 혹시 관련해 경험이나 말씀을 나눠 주실 분이 계시다면 하단의 '<없는 생활>에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 구글 폼에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추워진 날씨와 함께 12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송년 모임 시즌을 맞아 무탈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