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첫 번째 편지를 보내고 나서 며칠 동안 저는 상당한 흥분 상태였습니다. 기자로 일하던 때는 세상과 나 사이에 회사의 이름이라는 보호막 같은 것이 있었고,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거나 매체에 원고를 실을 때도 늘 담당 편집자님과 소통하는 과정을 거쳤거든요. 그런데 내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서 바로 독자에게 보내는 산지 직송 시스템에 뛰어들고 보니 어디에도 숨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우면서도 신나더라고요. 몇몇 분이 보내주신 다정한 답장과 후원도(그중 대부분은 제 친구들의 신장개업 격려금이었지만,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멋진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그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다음에는 이 일에 관해 잊고 지내려 애썼습니다. 어떤 의미로든 너무 의식하거나 부담을 갖는다면 빨리 지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특히 저에게 중요한 건 구독자 수의 증감을 의식하지 않는 일이었어요. 유튜브나 SNS도 그렇지만, 제가 사용하는 메일링 서비스 역시 편지의 도달률, 개봉률을 비롯해 모든 데이터를 한눈에 즉시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숫자와 그래프 앞에서 눈을 흐리게 뜨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스물네 살 때 피트니스 클럽에 다닌 적이 있어요. 저는 오로지 인상 때문에 육상부 입부 권유를 받은 적이 있지만 100m 달리기 기록이 23초고, 타야 할 버스가 보여도 뛰지 않을 만큼 달리기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짧은 기간 동안 체중이 너무 늘어서, 매일 7km씩 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밖의 롯데리아 간판을 보며 내 몸과 식욕을 미워하는 시간은 너무 지긋지긋했는데……이런 얘기는 언젠가 다시 나누도록 하지요. 아무튼, 그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계속 팔다리를 움직이며 숫자 7이 0으로 향하길 기다리는 건 더욱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아예 수건으로 러닝머신 계기판을 덮어버렸어요. 달리기는 여전히 힘들었지만, 마음을 초조하게 만드는 요소가 눈앞에서 사라지니 훨씬 평온하게 달릴 수 있더라고요.

외부의 평가, 주목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또 하나 도움이 된 말이 있어요. 작년 11월에 이경실 씨의 유튜브 채널 ‘호걸언니’에 출연한 정선희 씨가 들려줘서 꽤 유명해진 얘기인데요. 어느 날, 최화정 씨에게 한 아이돌이 찾아와 고민을 상담했다고 합니다. (정선희 씨의 기막힌 성대모사로 들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링크)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저를 미워해요. 저를 오해하고, 저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악플을 달아요.”

그러자 최화정 씨가 아주 밝고 가벼운 말투로 대답했다고 해요.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누굴 좋아하기도 해. 사람들이 너를 모르고 싫어하는 것처럼, 너의 진짜를 또 모르고 좋아하는 것도 있어. 퉁쳐!”

물론 연예인이 불특정다수로부터 받는 부정적 피드백은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느끼는 스트레스와는 차원이 다르겠지만, 오랫동안 부당한 비난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정선희 씨도 “퉁쳐!”를 좌우명으로 삼으셨다는 얘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진짜 표독하게 굴거나 엄마한테 대들 때, 나도 (나한테) 정나미 떨어질 때가 있거든. 하지만 그런 나를 모른 채 이웃집 언니 같고 푸근하다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잖아. 그런 사람도 있고,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쟤는 뭔가 꿍꿍이가 있고 그럴 거야’ 생각하는 사람도 있잖아. 하지만, 퉁쳐!”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저는 백 명의 칭찬보다 한 명의 비판을 더 크고 아프게 느끼는 사람이었어요. 아직 있지도 않은 부정적 반응이 겁나서 망설이는 일도 많았고요. 그런데 저렇게 생각해보니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는 건 당연하거니와, 나를 잘 안다 해서 좋아할 리도 없을 것 같더라고요. 오히려 나의 별로인 모습을 잘 모르는 채, 좋게 ‘오해’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살면서 가끔 얻을 수 있는 의외의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부정적인 반응이 있더라도 조금 의연히 퉁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가 뭐라 해도, 듣는 사람이 줄어들더라도 계속하는 것만은 저에게 달린 일이니까요. (그렇다고 구독을 막 해지하셔도 상관없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오늘의 사진은 블루베리입니다. 첫 번째 편지를 보낸 다음 날 시부모님댁 마당에 열려 있던 모습인데, 두 번째 편지를 쓰는 오늘 아주 잘 익은 블루베리가 집에 도착했어요. 지난 보름이 저에겐 아주 짧게 느껴졌는데 블루베리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나 봅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