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주말에 전 직장 후배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때보다 조금 긴장되는 자리였어요. 후배가 청첩장을 건넬 때 저에게 축사를 부탁했거든요.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이제 그럴 나이가 됐나?’였어요. 그렇긴 하더군요…….

그리고 함께 일할 때 잘해준 게 없는 선배이다 보니, 이제라도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해주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저에겐 업보가 있었습니다. 7년 전, 저 역시 학교 선배 언니에게 축사를 부탁했거든요.

그때는 내 결혼식에 누군가를 모시는 일이, 상대에게 어떤 무게를 갖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스무 살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지켜봐 주고 성장하도록 도와준 사람에게 축하의 말을 듣고 싶은 ‘나의 마음’이 가장 앞섰거든요. 다행히 언니는 늘 그랬듯 저의 밑도 끝도 없는 부탁을 선뜻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반항기 흑역사 폭로로 하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뒤 따뜻한 덕담을 들려주었어요. 언니는 그 일이 조금도 어렵지 않은 것처럼 즐거운 얼굴이었는데, 막상 제가 같은 자리에 선다고 생각하니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결혼식은 주인공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와 동료, 신부와 신랑이 잘 기억조차 못 할 만큼 먼 친지들까지 모이는 자리입니다. 갓난아기부터 구순 노인까지 참석하고, 신부와 신랑에 관해 그들이 가진 이미지와 정보는 모두 다릅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되 1) 축하의 마음을 담아 2) 너무 지루하지 않게 3) 그러나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4) 3분 내로 말하려면 뭐라고 해야 할지 무척 고민되었어요.

결혼식 날, 신부와 신랑 다음으로 긴장했던 사람은 아마 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보다 먼저 축사하신 신랑의 친구분은 타고난 무대 체질로, 원고도 없이 유쾌한 덕담을 들려준 다음 신부 어머님 앞에서 “장모님~”으로 시작되는 노래와 댄스 실력까지 선보였습니다. 하객들이 환호하는 걸 보며 저는 입이 바짝 마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차례가 되자 아주 태연한 척 앞으로 나갔습니다.

적절한 축사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객들이 앞서보다 덜 웃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다만 이제 고작 결혼 8년 차에 접어드는 사람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 정도였던 것 같아요. 저는 원고를 미리 준비해갔지만, 현장에서 든 생각을 덧붙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런데, 오늘 두 사람을 보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의 사진은 며칠 전 동네 화단 앞을 지나다 찍은 것입니다. 제 주먹보다 큰 꽃송이가 멋지게 피어 있어서 뭘까 궁금했는데, 친구가 ‘부용’이라고 알려주었어요. 시나 소설에서 가끔 보았던 이름인데 이렇게 위풍당당한 식물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터라 신기했습니다.

매미가 우는 계절입니다. 가끔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온종일 시끄러울 수 있냐고 투덜대지만, 동시에 생각합니다. 이런 날은 1년 중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라는 걸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