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꽤 긴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가끔 ‘내가 혹시 슈퍼면역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식구가 둘 뿐인 데다 바깥출입이 적은 프리랜서라 바이러스와 접촉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었어요. 지난주, 몸살 기운이 있어 병원에 갔습니다. 체온 37.9℃, 코로나19 검사를 해보니 양성이더군요.

저녁 일정이 있어 나가는 길이었는데, 바로 집으로 돌아왔어요. 원고는 휴재하거나 마감일을 늦춰 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다음 날 오후로 예정되었던 회의는 비대면으로 바뀌었습니다. 다행히 이 회의를 마칠 때까지는 목소리가 나왔는데, 그 후로 목이 붓기 시작하더니 말로만 듣던 ‘면도칼을 삼키는 것 같은 고통’이 이어졌습니다. 열과 근육통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어요. 사흘 뒤, 남편이 확진되었습니다. 열이 오르건 몸이 아프건 초지일관 ‘음성’ 판정만 내리는 자가진단 키트가 아무래도 수상해 병원에 가 보니 양성이더군요.

근처에 사시는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분명 땅이 꺼질 듯한 걱정 끝에 음식을 잔뜩 만들어다 주실 텐데, 일단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미각과 후각을 잃는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식욕이 사라지더라고요. 하지만 약을 먹어야 하니 자고 일어나면 두유와 사과를 의무감으로 먹었습니다. 입맛이 없는 와중에도 썸머킹 사과는 상큼해서 그럭저럭 잘 넘어가는 편이었어요. 친구들이 배달대행업체 상품권과 레토르트 국 등을 보내 준 덕분에 몇 끼를 더 챙겨 먹었습니다. 좋아하는 양념치킨을 먹는데도 입 안에서 맛이 겉도는 것 같아 조금 슬펐습니다. 게다가 과자 한 봉지를 뜯은 자리에서 다 먹을 수 없다니 이럴 수가!

둘이 사는 집에서 둘 다 아프고 기운이 없으니 일상은 금세 어수선해졌습니다. 내내 쓰러져 있다가 깨어나면 각자 먹을 수 있는 걸 간신히 챙겨 먹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밖에 나갈 수가 없어서 현관에는 점점 쓰레기가 쌓여갔어요. 침대보와 베갯잇도 자주 빨아 교체해야 하는데 계속 누워 있다 보니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더군요. 세탁물을 찾으러 갈 수도, 도서관에 신청해둔 책을 빌리러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물 같은 생필품은 배달로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아이 없이 사는 부부에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아마 “나중에 늙고 아플 때 자식도 없이 어떻게 살려고?” 일 거예요. 물론 그런 말 자체는 저를 조금도 설득하지 못하지만, 이미 나이가 들고 신체 기능이 점점 떨어져 가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는 외면한다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겪은 일은 제가 막연히 떠올렸던 미래를 조금 가까이 당겨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해준 기회이기도 했어요. 목이 아파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자 대화가 줄고, 기력이 없으니 평소처럼 서로를 돌봐주는 자잘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가족 구성의 단출함이 어느 순간 적막함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날들이 다시 올 때, 그리고 그렇게 계속 살아가야 할 때 그 일상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가 앞으로 우리의 과제겠지요.

자가격리가 끝난 뒤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었어요. 아직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 자야 하고 집중력이 영 돌아오지 않는 것 같지만 그건 원래 그랬 아, 아닙니다. 다음 주부터는 바쁘다는 핑계로 한 달이나 쉬었던 요가를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계속 누워만 있었더니 가뜩이나 없던 근육이 다 사라졌는지, 조금 아까 냄비를 들어 올리다가 또 등 근육을 삐끗했거든요) 어떤 분께서는 자가격리를 마치고 나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셨다던데, 저도 그 말씀을 듣고 나서 그 일에 관해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편지가 유독 두서없이 느껴지셨다면 코로나 후유증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저는 최소한 내년까지 이 핑계를 써먹으려 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 추신

이 이야기를 자주 드리지는 못하지만,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드립니다. 매미 이야기를 한 날엔 ‘맴맴’, 달리기 이야기를 한 날엔 ‘100m23초’라고 적어 보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웃고, 낯선 이름들을 보며 계속 쓸 용기를 얻고, 또 제가 아는 이름 앞에선 반가움과 쑥스러움이 교차하기도 해요. 오늘은 그중 일부를 신림동 호우 참사로 돌아가신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부루벨코리아지부 홍수지 총무부장님 조의금으로 보내드렸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