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많을수록 딴짓에 집중하게 되는 건 어째서일까요. 머리를 쥐어뜯으며 기말 과제에 매달리다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딩크에 관한 게시물을 보게 되었어요. 4, 50대 이상 딩크의 현실적인 삶이 어떤지 궁금하다는 질문이었는데, 댓글이 400개 이상 달릴 만큼 반응이 뜨겁더라고요. 화장실 청소조차 재미있게 느껴지는 과제 마감 기간에 이렇게 유혹적인 주제라니, ‘새 댓글 알림’ 설정까지 켜놓고 몰입해 읽었습니다.
우선, 자신이 딩크임을 밝히고 댓글을 다신 분들의 다수는 40대였습니다. 배우자와의 친밀감이나 경제적 여유, 시간적 자유 등의 이유로 무자녀 삶이라는 선택에 매우 만족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자신은 딩크가 아니지만 주변의 무자녀 부부를 보니 외로워 보이더라, 결국 이혼하더라, ‘자발적’ 딩크는 거의 없더라 같은 댓글을 다는 분들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흉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무자녀 삶에 다소 아쉬움이 있는 사람이라도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려워지거든요. 아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 불행하고 외롭기를 기대하는 악의를 차단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발동하는 거죠. 결국, 일종의 ‘행복 배틀’이 벌어지다가 유자녀-무자녀인 사람 간에 원색적인 비난을 주고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글쓴이에게 왜 이렇게 ‘분란’을 일으키는 글을 썼냐며 탓하기까지 하더군요. 물론 의미 있고 솔직한 댓글도 있었지만, 딩크의 삶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점은, 이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무자녀 선택이 ‘옳은’ 것인지 평가받는 연령대가 은근슬쩍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었어요. 글쓴이는 한국 사회에서 아직 흔히 보기는 어려운 40대 이상 딩크의 삶이 궁금했던 것 같고, 마침 40대 딩크인 분들 여럿이 현재의 삶이 좋다는 댓글을 달았거든요. 그러자 누군가 ‘40대엔 모른다. 50대에 후회할 수 있다’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후에 ‘후회는 없고 차근히 노후를 준비 중이다’라는 50대 딩크 분들이 나타나자 또 어느 분이 ‘60대 이상의 후기가 진짜다’라고……. 하하하.
예전에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어떤 중년 무자녀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회고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선택에 충분히 만족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해 느꼈던 외로움이나 무례한 말들로 인해 상처받은 경험 또한 담담히 털어놓으셨는데, 의외로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별일도 아닌데 예민하게 받아들이니까 상처로 느껴지는 거죠.”, “남들은 별로 관심도 없는데 딩크들은 왜 굳이 자기가 딩크라고 말하고 인정받지 못해서 안달인가요?” 그 커뮤니티는 누구나 자기 사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는 곳이었는데도요.
사람들이 남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건 반만 맞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타인의 나와 다른 면이나 ‘이상함’을 기민하게 포착해 비난할 때 더 많은 관심을 드러내는 것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그러다 보니 다수가 택하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존재를 무시당하거나 왜곡당하거나 그게 아니면 ‘완벽함’을 증명하도록 요구받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후회를 느낄 때가 있을 텐데도 무자녀 부부는 전혀 아쉬움이나 후회가 없는지, 과연 몇 살까지 후회 안 하고 살 수 있는지 두고 보자는 식의 시선이 있는 것처럼요.
저는 무자녀 부부가 사회적 소수자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숫자가 적은 쪽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쪽보다 은근히 (혹은 대놓고) 신경 긁히는 스트레스를 훨씬 자주 겪는 일입니다. 참지 못해 반격이라도 하면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느냐, 역시 OO들은 유난스럽다며 슬쩍 발뺌하는 것까지가 자신을 정상이자 보편이라고 믿는 이들이 차지한 특권적 위치인 거죠. 그러니 그럴수록 내 삶의 존재 방식을 존중하는 사람들과 느슨한 연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아직 40대지만 60대까지 계속 이 얘기를 해서 ‘딩크_최종_진짜최종_진짜최최종_후기.txt’라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뭘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또 한 해가 끝나가네요. 혹시 지난 연말 보내드린 ‘우엉의 친구들에게’라는 편지를 기억하시나요? 올해도 제 우엉의 친구들인 여러분 덕분에 몇몇 곳에 후원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각 항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단체나 활동과 관련된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콜텍 해고노동자 故 임재춘 님 조의금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국내거주 고려인 동포를 지원하는 사단법인너머
목포고양이보호연합_전남서남권고양이복지협회
한국고양이보호협회
故 임보라 목사 조의금
여성주의 문화운동단체 언니네트워크
홈리스행동
비글구조네트워크
서울퀴어문화축제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진보적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성소수자 축복으로 출교 선고받은 이동환 목사 후원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여성노동상담실
기말 과제의 산을 간신히 넘고 나니 1월에는 졸업시험이 있어(졸업은 멀었지만요.) 다음 편지 발송은 3주 후가 될 예정입니다. 행운을 빌어주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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