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이 아프다는 걸 처음 느꼈을 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일이든 운동이든 무릎을 다칠 만한 상황이 없었거든요. 파스를 붙이고 자기 전에 온찜질을 좀 하면 자연히 나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나흘이 지나도 통증이 계속되니 겁이 덜컥 나더군요. 아플 이유가 없는데 아프다면 정말 큰일 난 게 아닐까? 하지만 정형외과에 찾아가면서도 약만 며칠 먹으면 나을 거라고 막연히 믿었던 것 같아요, 정말로 무릎이 아플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연골이 손상됐어요. 수술해야 할 것 같은데…….”

몇 가지 검사 후 이런 진단을 받았을 땐 정말 놀랐습니다. 단순한 염증도 아니고 연골 손상이라니, 수술이 필요한 정도라니. 친구들도 깜짝 놀라더군요. “너는 축구도 안 하고, 농구도 안 하고, 심지어 걷기조차 안 하는데 왜?” 그러게 말입니다.

진단을 받고 나서 이틀 정도는 내가 왜 아프게 되었을까 골몰했어요. 의사도 (다른 환자에 비해)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됐느냐며 운동이나 집안일을 많이 하는지 묻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자타공인 무릎을 정말 아껴 쓰는 사람입니다. 무릎은 소중하고 연골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계단 오르내리기도 안 하고 등산도 안 한다는 핑계를 대며 살아왔는데, 너무 아낀 게 문제였을까요. 사정상 지난겨울부터 요가를 하지 못했고, 그사이 체중이 3kg 정도 늘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책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자기 관리를 잘못해서, 그릭 요거트에 빠져서, 약과를 너무 좋아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닐까.

그러다 문득 다른 원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올해로 10년째 쓰는 제 노트북은 요즘 보기 드물게 크고 무거운 제품입니다. 살 때만 해도 재택근무용이었거든요. 그런데 작년부터는 학교에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저는 필요한 짐을 다 가지고 다니는 보부상 스타일인데, 커다란 백 팩에 노트북과 책을 가득 채워 넣었으니 무게가 10kg 가까이 되었던 거죠. 예전에는 거대한 숄더백을 메고 하이힐을 신어도 멀쩡했으니까 백 팩에 운동화 차림으로 걸으면 더 나을 줄 알았는데, 문제는 제 몸이 그때 같지 않다는 사실이었어요. 읽지도 않을 책을 왜 그렇게 잔뜩 짊어지고 다녔던 건지.

당장은 학기 중이고 수술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일단 보존 치료부터 하기로 했어요. 도수 치료를 받고, 연골 재생 주사를 맞고, 체외충격파 치료도 받았습니다. 악명을 익히 들어온 체외충격파 치료는 제가 각오했던 일차원적 아픔이 아니라, 외계인에게 잡혀가 고문이라도 받는 것처럼 새로운 종류의 고통이었습니다. 신경 안쪽을 지이이잉- 도려내는 느낌이라 꽥 소리도 못 내고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리게 돼요. 실은 오늘 편지가 다른 날보다 좀 늦어진 것도, 제가 어제 치료와 주사 콤보로 급격히 피로해졌기 때문이랍니다. 

아프지 않을 때의 사람은 정말 뭘 모르고 산다는 것을, 꼭 제가 아플 때만 생각하게 되는 건 좀 민망한 일입니다.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있을 정도는 아닌데도 계속 아픈 곳을 신경 쓰며 움직이고 더 아파지는 게 아닐까 걱정하다 보면 신경이 곤두서거나 종종 외로워집니다. 나만이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내 몸의 아픔을 타인은 정확히 알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아픈 얘기를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자꾸 말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아픈 몸’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주목받는 것은 그동안 이 복잡한 맥락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고작 한쪽 무릎이 좀 불편한 채 지내고 있을 뿐인데 저는 벌써 좀 기가 죽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일부 잃게 되면서, 내게 언제나 열려있는 줄 알았던 가능성이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등산을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과 앞으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건(극단적 상상이지만) 아주 다른 기분이더군요. 헬스장 등록을 미루고 미루다 4월에는 꼭 하려 했는데 당분간 운동을 해선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보류했어요. 신호등의 초록 불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면서도 뛰지 못하고, 버스나 지하철에 탔을 때 빈자리가 나길 애타게 바랄 때에도 묘한 기분이 들어요. 이제 산책로에 길 잃은 지렁이들이 슬슬 나타나는 시기인데 쪼그리고 앉았다가 다시 일어날 때 무릎에 가장 무리가 가기 때문에 지렁이 구조대 활동에도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장애인 이동권에 관해서도 전보다 더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지하철역이 있는 사거리에서 가까운 입구 계단을 내려가는 대신 길을 두 번 건너서 엘리베이터를 찾다 보면요. 심지어 저는 겉보기엔 아주 신체 건강한 성인이라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조금 눈치가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내가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다른 교통약자를 봐도 선뜻 양보해주지 못할 것 같아 의기소침해지는 구석이 있습니다. 흔히 남의 배려를 받는 사람이 편하고 좋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남을 도울 수 있을 때 느끼는 기쁨과 자기효능감이 더 큰지도 모르겠어요.

돈이 엄청나게 깨지는 치료를 받은 지 몇 주 지났는데도 별다른 회복세를 느끼지 못하면서, 어쩌면 이제 무엇이든 ‘말끔히’ 낫지 않는 상태를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때가 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어르신들이 아이고 어깨야, 허리야, 하면서 일상을 계속 살아가시는 것처럼요. 그리고 예전에 <꽃보다 할배>라는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럽에 간 백일섭 씨가 걷는 문제로 크게 짜증 내던 장면이 문득 떠올랐어요. 무릎 등 관절이 좋지 않은 사람은 보행에 상시로 불편을 느끼고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에 참을성도 그만큼 적어지겠더라고요. 그때는 거의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했던 그 감정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한쪽 문이 열린다는 건, 혹시 <키다리 아저씨>에 나온 얘기였던가요. 저에게 오랫동안 수영을 영업해오던 친구는, 제가 다른 운동보다 무릎에 무리가 덜 가는 수영을 배울까 한다는 말을 꺼낸 이튿날 택배로 멋진 수영복을 보내주었습니다. 수영이 좋다는 건 알면서도 게으른 저로선 너무 번거로운 운동이라 생각해서 피해왔는데, 막상 다른 선택지가 다 사라지니 오히려 반갑더군요.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면 또 얼마나 헤매고 좌절할까 싶지만 이렇게 등 떠밀려 하는 도전에 아주 약간 설레기도 합니다.

벚꽃과 목련이 한창인 계절을 지나 라일락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꽃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하고, 꽃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요즘은 아무리 사진을 열심히 예쁘게 찍더라도 꽃나무 전체를 볼 때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녕히 계세요.

추신. ‘<없는 생활>에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보내주시는 사연은 물론, 감상을 담은 답장들도 모두 반갑게 읽고 있습니다. 지난번 <딩크 부부에게 교회가 불편한 이유>에 감상 보내주신 '4대째 기독교'님, 감사합니다. 다소 씁쓸한 이야기인데도 행간에 넘쳐흐르는 위트와 기세 덕분에 읽으면서 푸흐흐흐 웃었어요. 저도 '4대째 기독교'님의 고민과 생각과 실천에 동의하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