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생활을 추구하는 30대 후반 기혼 여성입니다. 얼마 전 엄마가 찾아왔어요. 저나 엄마나 특별한 날에나 겨우 연락하며 살 정도로 독립적인 사람들인데, 그런 엄마도 자식한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무슨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교육을 들어야 한다’라는 거죠.

요즘은 사소한 것까지 전부 온라인이고, 그걸 위한 각종 인증과 번거롭게 느껴지는 절차는 또 자식 아니면 해줄 수 없는 것들이라 엄마는 아침부터 김치와 밑반찬(뇌물)을 바리바리 싸서 오셨더라고요. 긴 삶 속에서 혼자서 많은 걸 해냈고 할 수 있으면서도, 온라인에 문외한이라는 한 가지 때문에 자식을 찾아야 하는 엄마를 보며 노인이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걸, 딩크로 살기로 결정했다면 필연적으로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곤 합니다.

종종 엄마를 통해서 제 노년의 삶을 짐작해봅니다. 상당히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딩크의 삶은, 없는 생활은 어디까지 지향해야 하는 걸까. 우리의 30년 뒤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걸까. 저 혼자 생각하는 것보단, 작가님 및 다른 구독자님들과 나눌 기회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 편지를 보내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엄마와 이틀에 걸친 통화 끝에 아빠의 여름 티셔츠 할인가 구입 미션을 겨우 마무리하고 답장을 씁니다. K장녀 님의 편지를 읽으며 얼마 전 트위터에서 본 사연이 떠올랐어요. 카페에서 작업 중이던 글쓴이에게 한 어르신이 다가오시더니 온라인 구직 사이트 접근 및 이력서 제출 방법에 관해 조심스레 도움을 청하셨다는 내용이었어요. 손으로 쓴 이력서를 사용하던 시대에 일하셨던 그분은 이메일로 서류를 제출하는 변화의 벽 앞에서 곤경에 처하셨고, 결국 일부러 버스를 타고 젊은 사람들이 다니는 카페까지 찾아오셨다고 해요. 그 어르신께서 처한 상황이 낯설지만은 않아 씁쓸해지는 한편, 바쁜 와중에도 차근히 도움을 드린 글쓴이에게 저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식에게 도움받는 것을 유독 어려워하는 부모님들이 계시지요. K장녀님의 어머님께서도 그런 분 같습니다. 딸에겐 조금 번거로울 뿐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도 ‘뇌물’까지 잔뜩 싸 오신 마음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도 하고, 어쩌면 부탁을 핑계 삼아 좀 더 챙겨 먹이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얼마 전 엄마에게 카카오톡 사진 ‘묶어 보내기’ 기능을 알려드린 데 든 공에 비해 엄마가 주신 열무김치에는 그 열 배 이상의 공이 들었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노인이 된 부모님을 도와드릴 땐 다소 귀찮으면서도 은은한 보람이 느껴지는(물론 부모님이 더 노쇠해지신다면 지금보다 훨씬 어깨가 무거워지겠지요) 것과 달리, 내가 노인이 된 이후의 삶을 상상할 때마다 저 역시 막막해집니다.

다른 무자녀 여성들과 만나 노후의 계획이나 대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돈’이 아니라 ‘키오스크’와 ‘기술’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신기술이 나왔을 때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든 흐름을 놓치지 말고 따라잡아야 한다”라는 위기감을 토로하시더라고요. 이 위기감의 근원에는 ‘키오스크’로 대표되는, 지금 자녀 세대인 우리가 마주하는 노인 디지털 소외 문제가 있구요.

몇 년 전 박막례 님의 유튜브를 통해 노인이 키오스크로 햄버거를 주문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드러난 적 있고 언론에서도 가끔 디지털 소외에 관해 다루지만, 효율과 인건비 절감을 향해 질주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 문제의 근본적 개선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저도 얼마 전 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 쿠폰을 사용하기 위해 어플리케이션을 깔고 회원가입 후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십여 분 간 헤맨 끝에 간신히 주문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 만약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냥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다니는 동네 마트는 종종 온라인 주문에만 적용되는 할인 쿠폰을 주는데, 마트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이런 혜택이 있는지조차 모르시겠지요.

이처럼 정보가 부족하거나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해 같은 물건이라도 더 비싼 값을 주고 구입하는 것을 ‘노인세’라고도 한다더군요. 그나마 물건은 돈을 좀 더 주고라도 구할 수 있다지만 아예 접근 자체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기차나 고속버스 예매는 물론 프로야구, 공연 등 문화생활과 관련된 티켓 예매도 거의 온라인으로만 가능하다는데 온라인에 익숙한 세대인 저는 언론 보도가 아니면 그런 벽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거든요. 지난해 KBO 한국시리즈 경기 티켓팅이 온라인 사전예매로만 이루어졌다는 기사에서 “딸 덕분에” 모처럼 야구장에 올 수 있었다는 부부의 인터뷰를 읽으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할머니를 위해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예매해드린 제 친구도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이벤트 응모와 관련해선 열 살 어린 ‘덕메(덕질 메이트)’의 도움을 톡톡히 받는다는데, 30년 뒤 지금의 엄마 나이가 될 저는 좋아하는 세계에서 밀려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러니 K장녀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 없는 삶을 살기로 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아직 노인이 되려면 먼 것 같아도 한 해 한 해 나이 듦을 실감할수록 노인의 삶의 질이나 사회 인프라 접근성을 고민하게 되는 거지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거의 모든 종류의 돌봄과 안전망이 부모-자식 관계로 이루어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통해 마련되었음을 생각한다면, 미래의 우리 사회가 그 같은 울타리에 속하지 않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떤 제도와 서비스를 제공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없는 생활’이라는 선택은 개인의 것이지만, 오히려 이런 삶의 방향을 결정했기에 내가 속한 공동체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여하고 만들어갈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몇 달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노인은 최저임금법 적용을 제외하자’라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 건의안’을 발의했다는 기사를 언뜻 접했을 때 가슴이 덜컹한 것도, 저것이 나의 미래일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딩크족’을 ‘욜로족’이나 ‘파이어족’과 동일한 의미로 여기며 현재를 즐기고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데 아이 없는 삶의 최대 장점이 있다고도 하지만, 저는 우리가 조금 더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존재하면서도 모두 함께 살아가기 좋은 사회를 위한 고민과 참여의 끈을 놓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찜기 속의 만두가 된 것 같은 나날이네요.

다들 무사히 7월을 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추신. 가족 여행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저희와 같은 가족 구성(노인2, 중년 4, 아이 2)으로 해외여행을 계획 중이신 소연 님, ‘짜증내지 않고 웃으면서 잘 다녀오기!’라는 목표 달성이 쉽지 않으시겠지만 그 대신 많은 얘깃거리와 예상치 못한 추억을 만들어오실 수 있을 거예요. 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