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없으면 행복한 삶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개강이 고작 3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논문은 진척이 없다 보니 요즘은 자려고 누우면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에 대한 두려움까지 한꺼번에 밀려오더라고요. 졸업은 할 수 있을지, 이번 달 전기세, 내년부터 먹고 살 방법, 물가 상승과 기후 위기와 국민연금 붕괴와 우리 사회의 사건사고와 나의 노후, 그리고 아직 있지도 않은 운전면허를 딴 이후 교통사고라도 내면 어쩌나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에서 도망칠 방법은 보통 스마트폰을 켜는 겁니다.

깜깜한 방에서 화면 밝기를 최대로 올려 온갖 이야기의 파편을 주워 먹고 나서 간신히 잠이 들어도 다섯 시간 정도가 지나면 일단 일어나야 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귀찮음을 수반하는 일이라 이쯤에서 꼭 화장실에 가야 하거든요. 화장실에 다녀오며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자는 사이 멈춘 선풍기 버튼까지 다시 누른 다음 자리에 누우면 이미 정신은 애매한 상태로 깨어버립니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게 바로 자기 전에 느꼈던 백팔번뇌입니다. 그러면 또다시 제 인생의 문제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버릇처럼 머리맡으로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켜고……. 정신을 차려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습니다. 1분만 지나면 뭘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잡다하게 자극적인 텍스트를 쉼 없이 훑은 끝에 기절하듯 잠들었다 깨면 오후인데, 침대에 열두 시간은 누워 있었는데도 잠에서 깼을 땐 한숨도 못 잔 기분이 드는 게 지난 몇 달, 아니 수 년 동안 저의 수면 패턴이었어요.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건 지난주 어느 날 아침, 늘 그렇듯 자다 깨서 침침한 눈으로 스마트폰을 켜고 아무 게시판 글이나 훑고 있었을 때입니다. 보던 창을 끄고 쇼핑몰 앱에 들어가 디지털 알람시계를 하나 주문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다이소에서 거의 비슷한 제품을 3분의 1 가격에 팔고 있었지만, 그땐 뭔가를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머리맡에서 스마트폰을 치울 방법이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이틀 뒤 시계가 도착했습니다. 그 날 밤 자기 전 금욕상자에 스마트폰을 집어넣고 8시간 타이머를 맞춘 다음 거실에 두고 방으로 들어가 머리맡의 알람시계로 일어날 시간을 맞췄습니다.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을 보는 게 오랜 습관이다 보니 과연 스마트폰 없이 잠들 수 있을지 걱정이었지만, 외부에서 흡수하는 잡생각이 끊기니 오히려 더 빨리 잠들 수 있더라고요. 새벽에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잠에서 깼을 때도 어차피 스마트폰을 볼 수 없으니 다시 잠드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때, 그동안 잠에서 깰 때마다 느꼈던 엄청난 피로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점이었어요. 뻑뻑한 눈과 찌뿌둥한 머리가 아니라 그럭저럭 맑은 정신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다니, 지금까지 저는 눈과 뇌에 무슨 짓을 해왔던 걸까요?

그렇습니다. 오늘의 편지는 저 같은 스마트폰 중독자들에게 보내는 간증 글이에요. 물론 갑자기 강도가 들어서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데 내 전화기는 금욕상자에 들어 있고 48분 52초 더 기다려야 상자를 열 수 있다면 어떻게 할지 걱정될 때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저와 스마트폰을 물리적으로 분리한 선택은 성공적인 것 같아요. 전에는 스마트폰 알람이 울려서 눈을 뜨자마자 누운 채로 다시 폰을 보다가 배터리 잔량이 10% 미만으로 떨어진 뒤에야 거실로 나가 폰을 충전기에 꽂고 계속 봤다면, 이제는 시계 알람이 울리고 나서 5분 내로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갑니다. 스마트폰 찾으러요.

그래서 그게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거냐고 한다면 글쎄요. 어제, 목요일에 저는 비교적 아침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거실로 나와서 제가 자는 동안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고(스마트폰 봤다는 얘기) 방울토마토와 삶은 계란과 옥수수와 차가운 우유에 에스프레소 샷을 부어 미적지근하게 만든 라떼를 먹었어요.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논문에 필요한 책을 빌리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돌아와 샤워하며 화장실 청소를 했습니다. 조금만 문질러도 세면대와 타일의 반짝임을 확인할 수 있는 화장실 청소는 자기효능감을 느끼기에 아주 좋은 작업이거든요. 그다음에는 냉동실을 털어 유통기한이 2년은 지난 호떡을 지져 먹고 마트에 두고 온 카드를 찾으러 다녀와서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었습니다. 미드도 세 편쯤 봤고요. (넷플릭스의 <스위트 매그놀리아>인데, 주인공 중 한 명은 아이를 원하는 여성이고 그의 애인인 남성은 신념에 따라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해서 둘은 헤어집니다. 그런데 이별 후 여성은 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저는 그렇게 신념이 뚜렷한 남자가 왜 피임은 제대로 안 했는지 의문입니다) 중간중간 친구들과 카톡으로 수다도 떨고 약속 조정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녁이 되었고 정작 논문 작업은 하나도 못 했지만, 그렇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도 망했네’라는 기분이 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좀 더 괜찮은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자로서 그냥 말하고 싶었답니다. 내일은 내일의 제가 뭐라도 하기를 바라며.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