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이야기를 읽고 저의 이전 고민이 생각나 글을 남깁니다.

결혼생활이 익숙해지고 상사분들이 보기엔 제가 이제 2세 고민을 할 때쯤,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의 선택에 대한 답을 찾는 문답들 같아 불쾌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무자녀 부부(저는 ‘딩크’, ‘싱크’라 하지 않고 이 표현을 씁니다.)를 불완전하게 여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물을 키우면서 사는 것도 괜찮아”, “부부가 여행 자주 다니는 것도 보기 좋더라” 하는 등. 그때쯤 적어두었던 글을 함께 보냅니다. 서른한 살의 일기네요.

“얼마 전 사람들과 자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당연히 나의 자녀계획 ㅡ당분간 아이를 ‘안 만들 의지가 있음’ㅡ을 피력하고 그 이유를 이야기했는데, 어느새 나의 자녀계획에 대한 이유의 타당성에 대해 공격받고 변명해야 했다. 나름 즐거운 대화였지만 끝 맛이 찝찝해서, 혼자서 우리의 자녀계획과 그 이유에 대해 논리적 빈틈은 없는지, 나의 의지가 도피는 아닌가에 대해 한참을 더 고민해야만 했다.

지금의 나, 우리 그대로 온전해서 아이가 필요하지 않다. 아이가 없는 나의, 우리의 삶이 결핍되거나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아이가 ‘필요’한 존재라서, 혹은 아이 없는 삶이 결핍되어 아이를 만들었다고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단지, 아이가 없고, 아이가 없고 싶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어떤 설명도 이유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저는 며칠 뒤 아이가 없는 서른일곱 살 기혼 여성이 되겠네요. 곳곳에서 자녀가 없는 부부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서로 나누고 싶습니다. 좋은 편지 고맙습니다.

집요정 님, 편지 보내주셔서 반갑습니다. “동물 키우면서 사는 것도 괜찮아”, “부부가 여행 자주 다니는 것도 보기 좋더라” 같은 말을 보며 조금 웃었습니다. 그분들은 나름대로 무례를 범하지 않으려 애쓰시고, 배려해서 하신 말씀이겠지만, 무자녀 부부는 ‘완전한’ 가족이 아니므로 반려동물이나 여행으로라도 정서적 결핍을 채워야 한다는 무의식이 드러난 것 같아서요. 제가 아는 무자녀 부부의 상당수가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고, 자유롭게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는 무자녀 부부도 분명 있지만 저처럼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으로 ‘결핍’을 채워야 그런 분들이 보기에 그럴듯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요즘 저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진행되었던 무자녀가족 관련 연구논문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뼈저리게 느낀 것은 ‘나는 공부가 싫다’라는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을 읽으며 이 주제에 관해 더듬어나가다 보면 앞선 연구자들에게 저절로 겸허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들의 고민과 공부한 흔적, 각 연구 간의 연결이 든든하기도 하고, 내가 생각한 것들은 다 이미 누군가 연구해 남겨두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지요.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우는 손님이 처음인가요...)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무자녀 부부에 관한 인식이 썩 긍정적이지는 않지만, 과거의 연구를 보면 불과 20년 전만 해도 무자녀 부부에 관한 인식이 얼마나 부정적이었는지, 선택적 무자녀 부부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존재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논문은 '문화기술적 의사결정 모델에 따른 대학생들의 무자녀가족에 관한 인식 연구 (양성은, 2004)’였어요.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출산율은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무자녀가족(부부)의 비율 또한 빠르게 늘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수도권 한 대학의 결혼하지 않은 대학생(만19세~만 24세)들을 대상으로 무자녀가족에 관한 인식 등을 글로 적어달라고 요청했어요. 덕분에 연구참여자들의 가족가치관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무자녀가족이라는 용어 자체에 반감을 품고 부정하는 “무자녀가족은 단지 법적으로 부부생활을 하는 것이지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여, #31)”와, 유자녀가족이 되려는 이유 중 하나인 “제사 지낼 사람, 즉 상주가 있어야 한다(남, #14)”라는 답변이 상징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구참여자 103명 중 85명이 미래에 유자녀가족, 18명이 무자녀가족이 되겠다고 답변한 결과를 분석하며, 연구자는 이 숫자 그 자체보다 이들이 왜 그러한 의사결정을 하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자녀를 갖기로, 혹은 갖지 않기로 한 이유에서 드러나는 “규범적 가족구조(structure of the intact family)에 대한 긍정, 이분화된 성역할에 근거한 가족기능 수용, 문화적으로 규정된 전통적 부모역할에 대한 신념 등은 ‘신세대’라는 이들의 가족관이 과연 기성세대와 구별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죠. 공교롭게도 당시 ‘신세대’였던 연구참여자들은 저와 동년배고, 이 나이대 사람들이 집요정 님 세대의 선배나 상사가 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괜찮아’나 ‘~보기 좋더라’ 정도는 차라리 양반인 걸 수도요.

저에게 의미 있던 또 하나의 사실은 연구자 양성은 선생님이 “우리 사회가 무자녀가족에 대해 가진 오해와 편견을 지속적으로 경험”해온 기혼 무자녀 여성이시라는 점입니다. 연구에서 무자녀부부 대신 무자녀가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도, “이 단어에 대한 연구참여자들의 반응을 탐색하기 위한 의도와 함께 자녀가 없는 부부도 가족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음을 묵시적으로 표명하기 위함”이었다는 대목에서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비록 당시의 연구참여자 중 다수가 “가족=유자녀가족”으로 동일시하고 무자녀가족에 대해 “이기주의자”나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했을지라도, 20년이 지나서 이 연구를 발견한 저에겐 앞선 누군가 가졌던 문제의식과 고민의 결과가 실질적 도움뿐만 아니라 큰 위안이 되었거든요.

아이가 없는 마흔네 살 기혼 여성이 되고 나니(아니, 대체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은 걸까요?) 지금까지 그랬듯 나는 앞으로도 아이 없는 사람으로 살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감정이 생깁니다. 사람의 일이니까 ‘결코’나 ‘절대’ 같은 말은 쓰지 않을 뿐,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낸 후 5년이 흐르는 동안 제 마음은 점점 더 흔들리지 않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없는 생활’과 ‘있는 생활’ 사이에서 두리번거리는 분들이 공감하실 만한 얘기가 없을까 봐 걱정할 때도 있지만, 집요정 님처럼 ‘없는 생활’과 그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 주시는 분들 덕분에 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더 꺼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도 오늘, 그리고 미래의 누군가에게 위안이 된다면 좋겠어요.

무엇이든 ‘없는 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 무례와 오지랖이 펼쳐지지 않는 명절 연휴가 되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