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최근 연구 결과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아기와 거시경제’라는 제목의 이 연구는 전세계 출생률 감소 추세를 분석, 저출생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가사 분담의 성별 불균형을 지목했다고 합니다. 남성이 가사 노동을 더 많이 하는 국가의 출생률이 더 높고, 그렇지 않은 국가의 출생률은 더 낮다는 거죠. 한국의 경우 연구자료로 쓰인 2019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0.9명으로 여성이 가사와 육아에 할애하는 시간이 남성보다 하루 2.8시간 많았습니다. “한국은 부부 평등 측면에서 과거에 갇혀 있다”라고 지적한 골딘 교수는 “남성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기대가 바뀌지 않는 한 (저출생 문제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군요.

이 연구 관련 기사마다 성난 사람들의 반박 댓글이 쏟아지는 광경을 보며, 바로 이런 사회이기 때문에 2023년 합계출산율이 0.72명까지 떨어진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성차별적 사회구조 및 문화와 출생률의 상관관계는 골딘 교수뿐만 아니라 여러 학자와 연구자들이 다루어 온 주제입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세계 최저 출생률을 갱신해온 국가로 주목받는데, 이러한 특수성과 함께 제가 관심 있는 주제는 국가와 문화권을 떠나 아이를 원하지 않는 여성들의 공통된 감정과 경험입니다.

얼마 전 친구가 권해서 읽게 된 <마더후드>(저자 실라 헤티, 옮긴이 구원)는 한 여성의 내면을 따라가는 소설입니다. 화자는 30대 중반 작가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할머니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의료계 전문직을 갖고 평생 일했던 동유럽 출신 캐나다 이민자 엄마로부터 이해받지 못했던 예술가 딸입니다. 작가로 꾸준히 활동하고 사랑하는 남성과도 비교적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던 그는 언젠가부터 ‘아이를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출산하는 친구들은 주저 없이 아이를 낳으라 하고, “당신이 원하면 아이를 갖자. 하지만 당신이 아이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해.”라고 말하는 파트너 역시 그의 근원적 고민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당연히 아이를 가지라거나, 당신은 결국 아이를 갖게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 드물게 아이를 낳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기는 합니다. 삼십 대 딸을 둔 노교수인데요, “하지만 그건 교수님의 인생에서 제일 굉장한 경험 아니었나요?”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인정합니다. 즉, 타인들의 말은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선택에 혼란만 더하죠.

그래서 화자는 주역점에서 영감을 받은 동전 던지기로 자문자답을 이어갑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요.

[출산은 여성의 특별한 임무인가?

- 그렇다.

그렇군. 하지만 예술을 창조하는 여성은 아이를 낳지 않아도 양해를 얻을 수 있다고? 예술을 창조하지 않는 사람이 아이도 낳지 않으면 우주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인가?

- 그렇다.

그런 여성은 벌을 받나?

- 그렇다

삶의 신비와 기쁨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벌인가?

- 그렇다

다른 방식으로도 벌을 받나?

- 그렇다

유전자를 물려주지 못하는 것?

- 그렇다

하지만 나는 유전자를 물려주는 일에 관심 없는걸! 예술을 통해서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을까?

- 그렇다

자식을 갖지 않는 남자도 세상의 벌을 받나?

- 아니다

<마더후드> p.40-41]

동전 던지기는 물론, 거리에서 마주친 점쟁이나 타로 마스터의 말에까지 의미를 부여할 만큼 절박하게 답을 찾는 그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습니다.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상실감, 아이를 낳은 친구들과의 관계, 나에게 선택을 맡긴 파트너에 대한 복잡한 심경,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존재 가치, 생식 능력 감퇴에 관한 양가적 감정, 어머니와 할머니의 삶에 얽힌 애증 등 이 문제에 관해 고민하는 여성이라면 한 번쯤 부딪혔을 주제들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거든요. 저는 특히 “어머니가 되어보지 않고서도 내가 충분히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대목에서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보편적 경험’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인간에 대한 나의 이해도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과거의 제가 떠올라서요.

“아이를 키우는 데 매달리지 않는 여자는 왠지 위협적이다. 그는 예측불허다.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 무엇을 하려나? 어떤 문제를 일으키려나?”라는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에서 자신의 내면을 집요하게 들여다보길 포기하지 않는 그의 분투는 수년에 걸쳐 이어집니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우울해하다가, 신랄하게 비꼬는가 하면, 모순에 부딪히고, 망설이다 선언하고 마침내 어떠한 결론에 이르는 여정에 함께하며 저는 이 멀리 있는 여성에게 깊은 친밀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되지 않는’ 경험, 아이가 ‘없는’ 삶의 의미와 가치는 남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글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땐 왠지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이었어요.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일이란 얼마나 근사한지. 가장 중요한 것이 보일락 말락한 그 길을.”

안녕히 계세요.

* 추신. <영혼의 노숙자>　333회를 듣고 격려 보내주신 위모씨 님, 감사합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은 책상에 앉아서 타자를 두드리는 시간만이 아니라, 그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속으로 굴리고 좋은 것을 보고 듣고 읽고...하는 시간까지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우리 다들 조금씩 그렇게 생각하잖아요?”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하루하루 잘 지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