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저는 간단한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큰 수술이 아니라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고, 부모님에겐 아예 비밀로 했어요. 수술 당일, 바퀴 달린 침대에 누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라는 성경 구절이 적힌 천장을 바라보다 수술실로 이동했습니다. 마취 가스가 나오는 마스크를 착용한 뒤 ‘이거 안 듣는 거 같은데...?’라고 생각한 것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차려보니 회복실 침대였습니다.

저는 그동안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좀 씩씩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깨달았어요. 저는 사실 엄청나게 나약한 사람이더라고요. 그동안 아팠던 경험이 별로 없어서 착각했을 뿐이었어요. 더 민망한 건, 심하게 아프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링거로 진통제를 맞고 있어서 특별히 통증이랄 것도 없고, 경과를 지켜보다 괜찮으면 내일 아침 바로 퇴원할 수 있다는 데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힘들었어요.

몸이 무겁고 졸려 죽겠는데 마취에서 깨는 동안에는 잠들면 안 되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든데 화장실은 왜 이리 자주 가고 싶은지, 여기저기 연결된 링거 줄 때문에 어느 쪽으로 돌아누워도 불편하고, 약을 먹어야 하는데 속이 안 좋아서 밥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고, 이불은 너무 무겁고 공기는 건조해서 목이 가뭄의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는 것 같고, 수액을 계속 맞아 퉁퉁 부은 얼굴은 다른 사람처럼 보이더라고요.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우울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더군요. 입원해있는 동안엔 죄책감 없이 놀 수 있다는 생각에 드라마라도 보려고 아이패드를 챙겨왔지만, 앉아 있기는커녕 휴대폰 들여다볼 기력도 없으니 밤은 너무 길었습니다. 어떤 고통은 나눌수록 줄어든다고도 하지만, 나의 신체적 고통은 오롯이 나만 느낄 수 있다는 면에서 지독하게 외롭더군요. 몇 시간 뒤에는 퇴원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힘든 상태가 길어지거나 몸이 더 아프다면 죽고 싶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무척 놀랐습니다. 이렇게 작은 비바람 앞에 금세 무너지는 생 의지라니, 예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칼럼의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복직 일주일 만에 과로사한 공무원 워킹맘 얘기를 읽으며 떠오른 무교동 사거리의 어느 겨울날, 첫 아이를 낳고 복직한 지 얼마 안 됐던 그때,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다 불현듯 나는 울었다. ‘아, 나는 자살할 자유를 잃었구나.’ 어떻게라도 살아남아 새끼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 너무 무서워 거리에 선 채 통곡했던 그 마음이 그 사무관에게도 똑같이 있었을 것이다.

- ‘나만 혼자 칼퇴근 했을 때’ 2017년 2월 2일 <한국일보> 박선영 기자]

나는 책임지고 키워야 할 아이도 없으니, 못 견디겠으면 그만 살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간사한 생각이 혼미한 와중에도 저를 조금 안도하게 했습니다. 동시에 고작 1박을 못 견뎌 죽네사네 하는 내가 너무 한심스럽기도 했어요. 부모님과 남편이 슬퍼할 테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이렇게 골골대며 일도 못 하고 웃거나 이야기할 기운도 없는 채로 살면 가족들이 더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이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안 아프게 세상을 떠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봤는데 쉽지 않겠더군요. 일단 존엄사가 법제화될 때까지 견뎌야 하는 걸까?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비약인데 그때는 정말 진지했던 걸 보면 마취 가스의 수상한 작용이었을까요.

나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 포기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병원에서 고작 하루 지내는 것도 이렇게 지긋지긋하고 괴로운데, 오랜 시간 입원해있던 친구와 가족을 간병하던 친구가 떠올랐어요.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을 텐데 더 마음 쓰지 못했던 게 후회되기도 하고, 가끔 병원에 가면 밝게 맞아주던 얼굴 뒤에 얼마나 강한 의지가 숨어 있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어요. 저도 누군가 아플 때 조금이나마 도움 되기 위해 졸업하면 면허부터 따겠다는 결심도 129번째로 했고요.

자다 깨다 하며 간신히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선 샤워부터 하고, 해물이 두 배 들어간 죽을 배달시켜 먹는 호사를 누리고 나니 그제야 컨디션이 조금 돌아온 기분이더군요. 진짜 평상시 컨디션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며칠의 시간이 더 걸렸고, 아직도 다 돌아오지는 않은 것 같지만요.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깊이 있고 성찰적인 글을 쓰시는 분들이 새삼 존경스러웠어요. 전 그렇게 아픈 것도 아니었거니와, 그냥 엄살쟁이의 자기고백 밖에 할 얘기가 없어서 부끄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가 아픔에 살짝 발을 담가보니 겨우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아픈 채로, 혹은 아픈 누군가를 돌보며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의 위대함을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