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근 난소에서 9cm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구센치입니다.

평소에 워낙 생리통이 심했던지라 자궁내막증은 생각도 못 했는데…. 더구나 복강경이라고 얕잡아 봤던 수술도 이렇게 아플 줄 몰랐습니다. 혹도 제거하고, 붙어있던 포궁과 난소들을 떼어내고, 심한 자궁내막증을 다 드러내서 그런 걸까요? 퇴원하고 나서도 한없이 떨어진 체력과 식욕, 그리고 일상생활에 제약이 있어 안 그래도 더운 여름 날씨에 더더욱 쳐지고 있습니다.

수술 전에는 (물론 난소낭종도 간단하거나 아프지 않은 병명은 아니나) ‘이 정도인 게 어디야’, ‘죽을병이나 개복 수술 아닌 게 어디야’ 생각했으나 막상 입원해서는 조금... 많이 무섭더라고요. 수술 끝나고는 아파서 꼬박 24시간을 물도 못 마시고 끙끙거렸는데, 처치 전이나 후나 저를 괴롭게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나는 애도 안 낳을 건데 왜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거지? 매달 치러야 하는 생리와의 지리멸렬한 관계도 그렇고,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피를 뱉어내는 것 외에는 별 쓸모가 없을 제 포궁과 난소도 그렇고, 극단적으로는 왜 그냥 떼어낼 순 없는 거지? 물론, 떼어내는 건 말도 안 되게 더 아플 거라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약 복용이나 피임 기구 삽입이라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구요. 다만 아직 100% 확실한 비혼, 비출산이 아니고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경제적 혹은 신체적 부담이 걱정되어 이도 저도 못 하고 나쁜 남자를 떼어내지 못하는 구질구질한 여주인공처럼 그저 이 원망스러운 관계를 질질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대체로 신세한탄만 하게 된 것 같습니다만, 대체 다른 분들은 포궁과 생리와 뒤따라오는 수많은 선혈이 낭자하거나 발목을 붙잡는 여성의 신체와의 전쟁에서 어떻게 각개전투하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처음으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혹여나 이전에 다룬 적이 있는 내용이나 제가 놓친 거라면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거나 들을 곳이 적은 환경에서 덕분에 위로받으며 언제나 잘 읽고 있다는 말씀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상 오늘도 배꼽에 땡기는 통증을 여전히 느끼며,

– 구센치]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구센치님.

실은 제가 몇 달 전 받은 수술도 대충 비슷한 것이라 그때를 떠올리며 읽다가 몸서리쳤습니다. 큰 수술이 아니어도 아픈 건 내 몸이니 도망칠 수 없어 괴롭죠. 게다가 여름이라 더 불편하실 것 같아요.

사십 대에 접어들고 나서 직업도 취미도 라이프스타일도 다른 제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된 카페가 있습니다. 바로 여성질환 수술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 네이버의 ‘근종힐링카페’ 입니다. 지금 보니 회원 수가 23만 명을 훌쩍 넘는데, 저도 지난번 수술을 앞두고 친구의 추천으로 가입했습니다. 능동적인 환자가 되기엔 너무 게으른지라 정보를 열심히 찾아본 건 아니지만, 세분화된 게시판마다 쏟아지는 글들을 보며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여자들이 여기저기서 피 흘리고 수술하고 회복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구센치님이 떠올리신 자궁과 난소 적출 문제는 근종힐링카페에서도 중요한 고민 중 하나입니다. 언젠가 출산하고 싶을지도 모르는 젊은 여성, 출산한 적 없고 계획도 없는 제 또래 여성, 심지어 이번 생의 출산을 모두 마친 여성에게도 가장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로 보이더군요. 만약 자궁과 난소의 존재가 내 목숨을 위협하는 수준이라면 당연히 수술하겠지만 그 정도는 아닌데, 대신 심한 고통과 번거로운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후의 내 삶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의사의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해 경험자의 조언을 구하더라도 누군가는 ‘날아갈 것 같다’라고 하는 반면, 누군가는 ‘상실감이 크다’라고 하니 마음이 복잡해질 수밖에요.

사실 임신과 출산이라는 큰 이벤트 없이도 여성의 몸은 자기와의 끊임없는 싸움터죠. 생리통, 자궁근종, 난소낭종, 자궁내막증, 다낭성 난소증후군, PMS 정도가 비교적 흔한 증상 및 질환이고 이쪽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새로운 문제가 터집니다. 생리는 하면 짜증나고 안 하면 불안하다고 하잖아요. 게다가 호르몬은 난소나 자궁만이 아니라 온몸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쳐, 저는 몇 달 전부터 자고 일어나면 손가락 관절이 뻣뻣하게 굳어 있습니다. 이유는 에스트로겐 수치 감소인데요, 손가락을 굽혔다 펴는 아주 간단한 동작에 날카로운 통증이 따라붙는 걸 느낄 때마다 <서브스턴스>에서 관절염으로 구부러진 무릎을 펴느라 비명을 질렀던 엘리자베스는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하곤 합니다.

구센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이렇게 각개전투하고 있지만, 다른 여성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알게 되면 어쩐지 새로운 전술을 배운 기분이 듭니다. 이제 저를 포함해 제 주위에는 수술, 피임 기구 삽입, 완경 등 여러 이유로 생리를 하지 않게 된 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는데, 얼마 전 한 친구는 전에 사둔 생리대를 몽땅 여성 노숙자 쉼터에 기부했습니다. 생리를 안 하니까 수영장에 결석하지 않고 다닐 수 있어 좋다고 말해준 친구도 있었어요. (저로선 합법적으로 수영 수업 빼먹을 기회를 잃어 아쉽지만요.)

그리고 여성 의학 전문가들이 쓴 <질의 응답: 우리가 궁금했던 여성 성기의 모든 것>(니나 브로크만·엘렌 스퇴켄 달 지음, 김명남 옮김) 같은 책을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믿음직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거든요. 저는 오래 전 자궁 내막증 수술을 받았지만 이 질환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자궁 내막증을 '스페인 코스타 델 솔 해변에 정착한 영국인 은퇴자들처럼, 새 거주지를 찾았음에도 자신의 출신과 목적을 잊지 않는' 자궁 내막 세포들과 이웃 세포 간의 충돌에 비유한 대목이 무척 재미있기도 하고 제가 겪은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무시무시한 폭염 속에서 배꼽 통증은 좀 나아지셨는지 궁금합니다.

쾌유를 빕니다. 

안녕히 계세요.

추신. 다들 올 여름 수박운이 어떠신가요? 저는 드디어 수박만을 담는 통과 수박자르는 용도의 스텐 뒤집개를 장만해 열심히 사먹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1승 2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