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없는생활>의 화두가 ‘유전자의 부르심’이라, 저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글을 써봅니다. 저의 경우는 결혼하면서부터 딱히 출산에 대한 욕구랄까 책임이랄까 그 어떤 마음도 다짐도 없는 상태로 지내다가 돈을 잘 못 버는 프리랜서인 우리 처지를 생각해 비출산이 아무래도 인생의 부침을 줄이는 방법이다 싶어 딩크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남편의 격한 동의(오히려 그는 저보다 더 출산을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아요)와 지지, 양가 어르신들을 향한 공동의 방어 또한 꾸준히 펼쳐 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마흔이 넘으면서부터 남편이 가끔 이런 말을 툭툭 내뱉곤 합니다.

 

“우리도 애기 하나 있으면 저렇게 이쁘겠지?”

“당신 닮은 딸 하나 있었으면 진짜 너무 사랑스러웠을 것 같아.”

“딸 키우면 어떤 느낌일까?”

 

제가 속으로 ‘아니 이게 뭔 소리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왜, 아기 갖고 싶어? 딸 하나 낳을까?”라고 대꾸하면 그는 곧 “아니야,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라며 슬쩍 넘겼습니다. 이런 말들은 짧게 그치지 않고 최근까지 종종 이어져 오고 있는데요, 이제 저는 “낳을까” 대신 “한 명 입양해”라고 받아치는 중입니다. 농담으로라도 낳겠다는 말은 못 하겠는 마흔 중반의 허약한 몸뚱이라서요. 저에게는 유전자의 부르심도 딱히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아무튼, 문제는 이것입니다. 나의 가장 친밀하고 듬직한 지지자이자 동반자, 비출산의 동료인 남편이 갑자기 유전자의 부르심 때문인지 저런 소리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 어떤 사회적·가정적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던 제 마음이 남편의 저 말에는 타격을 받더군요. ‘저렇게 자꾸 얘기하는 걸 보면 정말 아이를 갖고 싶은가? 비출산을 후회하고 있는 거 아냐? 그럼 난 어떡해? 저러다가 어디 가서 아이 하나 덜컥 만들어 오는 건 아닐까?’ 마지막 의문은 너무 멀리 간 것 같지만, 드라마보다 스펙터클한 것이 현실이니 아예 생각 못 할 일도 아니지요. 그러다가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굳건한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나의 가장 친밀한 동료가 흔들릴 때가 있으셨나요? 있으셨다면 그 고개를 어떻게 넘어가셨는지, 경험을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또한 마흔 중반의 허약한 몸뚱이에, 유전자의 부르심도 받은 적 없으며, 수입이 많지 않은 프리랜서 부부로 살고 있다 보니 제이지님의 선택과 고민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다만 남편이 아이 문제로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던 적이 없어 충분한 경험을 나눠드릴 수는 없지만, 아직 다른 분들의 이야기가 도착하지 않아 그냥 제 이야기를 씁니다.

 

사실, 아이 문제에 관한 배우자의 입장이 어떻든 이런 종류의 불안이 존재하지 않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북미 지역 무자녀 커플을 연구한 책 <둘이면 충분해>의 저자 로라 스콧도 책 원고를 출판사로 넘길 때 남편이 갑자기 ‘사실은 아이를 원했다’라고 말할까 봐 두려웠고, 남편의 혼외 자식을 낳은 여성에게 전화가 걸려오는 상상을 했다고 하니까요.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쓰며 이 책을 읽었던 저는 그런 두려움을 저만 가졌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오히려 안도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넘게 지난 지금, 저는 엄마가 되는 삶으로부터 훨씬 더 멀어졌고, 배우자 또한 우리 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제 마음속에서 그런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사람의 욕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거나 새롭게 생겨나기도 하니까요. 그것이 유전자의 부르심 때문이든, 인생에 대한 관점의 변화 때문이든, 중년의 위기 때문이든요.

 

아이 없이 살자던 마음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지요. 지금 배우자분은 과거와 달라진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제이지님의 불안을 가중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살면서 한두 번 정도는 ‘우리에게도 아이가 있으면 어떨까? 예쁘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무심결에 입 밖에 낼 수도 있지만, 제이지님의 반응을 보고서도 제대로 대화를 나누기보다 같은 방식으로 계속 떠보는 듯한 말을 던지니 말입니다. 그건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배우자분이 정말로 아이를 원한다면 그 삶의 가능성을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하며, 혹시라도 가족의 형태가 바뀌게 될 때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약속 혹은 각오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외부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던 마음이 배우자분의 툭툭 내뱉는 말에 타격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꽤 오랜 시간 합의 하에 꾸려왔던 둘만의 친밀한 공동체가 나의 바람과 무관하게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요. 출산 장려 문화가 지배하는 (그러면서도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는) 한국의 드라마에서는 ‘딩크하다가 남편에게 버림받는 여자’의 수난사를 신난 듯 보여주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주제가 나오면 입을 모아 ‘한쪽이 아이 원하면 결국 이혼하더라’라고 말합니다.

부부 중 한쪽은 아이를 원하는데 다른 한쪽은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권장되는 서사는 딱 한 가지입니다. 고민 끝에 낳았는데, 지금은 두 사람 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며 ‘더 일찍 낳지 않은 걸 후회한다’라고요. 물론 다들 행복하다면 좋은 일입니다만...... 저는 부부 중 한 사람이 아이를 원한다고 해서, 다른 한 사람이 그 소망을 들어줘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이를 갖고, 낳고, 꽤 오랜 기간 주 양육자가 될 여성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면요.

 

제가 아는 무자녀 여성들은 남편이 아이를 원한다고 말하거나 원하는 것처럼 굴 때, ‘아이가 태어난 이후 우리의 삶을 계획하거나 생각해 보았냐’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정면대응하는 대신 그냥 시간을 끌기도, <금쪽같은 내 새끼>를 같이 보기도, 반려동물을 키우기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중에는 시간이 흐르며 남편이 무자녀 삶을 받아들이고 점점 더 만족함으로써 안정을 찾은 부부도, 아직 무자녀 삶에 대해 ‘완전히’ 합의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부부도, 고개를 넘다 보니 노년까지 함께해온 부부도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경우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세간에서 말하듯 출산 여부로 부딪히는 모든 부부가 이혼에서 해법을 찾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결혼과 사랑은 아주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얽혀 있기에, 사람들은 아이를 원하는(혹은 원하지 않는) 마음과 이 결혼을 유지함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꼭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도) 사이에서 저울이 기우는 쪽을 선택합니다. 아이 있는 부부들이 결혼 생활의 큰 문제와 마주했을 때 그러하듯이요. 물론 결혼은 그 자체로 영속성을 갖는 제도가 아니기에 누가 어느 시기에 어떤 이유로 이혼하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를 포함해 한국 사회의 모두가, 이혼은 법률상 혼인 관계의 소멸일 뿐 인생의 실패나 징벌이 아님을 좀 더 건조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내가 선택해서 이룬 유일한 인간 가족, 오랫동안 일상을 함께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었던 상대와의 인연이 끝난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닐 겁니다. 저 역시 가능하면 지금의 배우자와 해로하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제이지님의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멀리, 극단적 상상으로까지 흘러가는 이유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언젠가 배우자가 아이를 원해서 우리가 헤어지게 된다면 나는 정말로 아이를 갖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확신할 수 없거든요. 그러나 인생은 회귀물이 아니니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난날의 내가 걸어온 길 위에서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겠지요.

 

그나저나 저는 배우자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딸 키우는 게 어떤 느낌일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딸로 오래 살아온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와는 다를 테고, 딸은 생각보다 아빠를 아주 많이 닮는다는 진실을요. 이런 얘기를 포함해 두 분이 천천히 많은 얘기 나눠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이지님과 저희를 위해 “고개를 넘은” 경험을 들려주실 분들 언제나 환영입니다.

 

 

올여름 장마는 지나갔나 했더니 폭우로 수해를 입은 지역이 있어 안타깝네요.

밤사이 비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 추신. <발코니의 여자들> GV에 와 주신 분들, 정말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무자녀 여성의 선택도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작품을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