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보내드린 ‘나의 가장 친밀한 동료가 흔들릴 때’를 기억하시나요? 그동안 무자녀 부부로 잘 지내왔는데, 마흔이 지난 이후 배우자가 종종 아이 얘기를 꺼내 불안하다는 제이지님의 이야기였지요. 저도 답장을 드리긴 했지만, 이런 “고개를 넘은” 경험이 있는 분들의 경험을 좀 더 들려주시길 부탁드렸더니, 비슷한 시기를 지나오신 어피치님이 제이지 님의 사연에 관한 답장을 보내주셔서 소개합니다.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 어피치 님께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글을 읽고 늘 그래왔던 것보다 훨씬 훨씬 더 큰 공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맨날 공감하지만 ㅋㅋ). 심지어 메일 제목만 보고 ‘그 동료가 설마 남편일까? 아니겠지, 그냥 친한 직장 동료일 거야…. 그래야 해….’ 라며 불안해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답니다. 그만큼 아직도 남편의 입장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사람 마음을 두고 불안해하는 과정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도 아이 낳는 문제 중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래서 결혼 초반에는 남편에게 아이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나는 사실 있으면 좋겠다”라는 답이 나올까 봐 물어보지도 못하며 끙끙 앓던 시절이 있었고, 몇 년 동안이나 그걸 지속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 마음의 평안함을 유지하기 위해 조금 뻔뻔하게 대처해 보기로 했어요. ‘아니, 그렇게 말한들 어떻게 할 거야? 그건 희망사항인 거고 내 마음은 굳건해.’라고 말이죠.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일 뿐이니 그 상황에 맞게 대처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때문에 마음 졸이고 괜히 상대방을 실눈 뜨고 쳐다보면서 예민해지기 시작하면 관계만 더 해칠 것 같더라고요.

사람은 원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 혹은 상상을 더 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그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혹은 집착인지도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상황이 어지러워지더라고요. 그보다는 아이 없는 삶의 장점을 더 생각하며 지금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제이지님 마음을 누구보다 정말 공감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부부 두 사람의 솔직한 대화 나눔 밖에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어떻게 얘기하기도 어렵네요. 하지만 내 마음을 한 명이라도 공감해 줄 때 숨 쉴 구멍이 생겨나는 걸 알기 때문에 답장을 드립니다. 살다 보니 이제는 관계에 있어서 아이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더 들어요. 그 ‘있고 없고’에만 집중하다 보면 더 중요한 걸 놓쳐 버릴 수도 있겠더라고요. 아이 유무보다는 부부의 관계를 더 긍정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일에 더 초점을 맞추며 살려고 노력해요.

이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씀대로, 우리의 답장이 제이지님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 마음을 한 명이라도 공감해줄 때 숨 쉴 구멍이 생겨나는”걸 알기에 글을 보내주신 어피치님의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온라인에 떠도는 많은 이야기 가운데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 커뮤니티에서, 이른바 ‘지잡대’라고 폄하되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모여 학교에 관한 웃기고도 어이없는 에피소드를 공유하던 중 누군가 쓴 문장이었어요. “모이니까 별로 안 슬프다ㅋㅋㅋㅋㅋㅋㅋㅋ” 학벌을 수직으로 줄 세우고 대입 성적에 따라 평생이 결정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명문대가 아닌, 인지도가 낮은 학교의 이름은 학생 각자에게 수치일 수도, 슬픔일 수도, 외로움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모여 보니 세상엔 나 같은 사람이 꽤나 많고, 심지어 그 공감대 덕분에 같이 웃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슬픔의 무게는 한결 덜해졌겠죠.

이 학생들과 무자녀 여성이 겪는 괴로움의 성격은 다르지만, 저는 “모이니까”라는 말의 의미를 종종 생각합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서로 만난 적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 동안 제 마음의 지지대가 된 것은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는, 때로는 자기 이야기도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무자녀 삶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혹은 늘고 있기 때문에 이 삶을 단순한 도식에 집어넣어 단정 짓거나 왜곡하는 시선에 지겨울 때도, 화날 때도, 슬플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삶을 이해하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존재가, 저에게 그러했듯 여러분에게도 숨 쉴 구멍이 되면 좋겠습니다.

불볕더위를 겨우 지나 여름이 저물어가는 가운데, 며칠 전 세탁기가 고장 났습니다. 오래전 엄마가 “우리 식구 전부 합친 것보다 얘가 내 일을 더 많이 도와준다”라고 말씀하셨듯, 세탁기는 생활가전 중에서도 가장 고된 노동을 담당하는 제품이죠. 저희 집 세탁기도 오랜 세월 잘 버텨주었는데 결국 축이 망가지는 바람에 수리하는 것보다 새 제품을 사는 게 나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밤중에 남편과 빨랫감을 이고 지고 코인 세탁소에 다녀오니 몇 시간 뒤 폭우가 쏟아지더군요. 결혼 10년을 지나다 보니 세탁기뿐만 아니라 냉장고에서는 물이 떨어지고, 서랍장이 스스로 열리는 등 말썽이 늘어갈 때마다 저만 나이 먹는 게 아니라 세상에 마모되지 않는 것은 없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네요.

안녕히 계세요.

추신. 수박 전승의 비결로 “과일가게랑 친해져서 추천해주시는 비싼 수박을 사는 것”이라는 우문현답을 들려주신 클루거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할인율만 보던 저도 이번엔 꽤 맛있는 수박을 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