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려보니 10월이 훌쩍 지나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상반기 내내 소파에 앉아서 인생을 낭비하던 저는 대학원에 들어간 이후 계속 으어어어~ 흐어어어~ 하며 허둥대고 있습니다. 항상 공부하는 것도 아니면서 공부 생각에 짓눌려 고통받다 보면 학기가 끝날 테고, 올해도 끝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지난주에는 모처럼 저녁 약속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와 관련된 작업을 통해 알게 된 기혼 무자녀 여성 두 분과 만났거든요.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과의 만남에는 내 선택에 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서 오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왜 아이를 안 낳느냐’고 쉽게 묻지만, 거기엔 단 한 가지 이유나 몇 마디 말로 답할 수 없는 감정과 판단과 욕망이 얽혀 있다는 걸 우리는 서로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것은 꼭 어떤 결핍이나 부정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요.

이날 만난 세 사람은 모두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 초반의 나이였습니다. 이 나이는 ‘딩크’(무자녀로 사는 데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많은 사람이 무자녀 부부를 통칭해 쓰는 대표적인 단어이니 편의상 이렇게 쓰겠습니다.)를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일종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것 같아요. 저 역시 삼십 대 후반에 내적 갈등이 가장 심했고, 다른 두 분도 작년 무렵까지는 출산 문제를 고민하셨다고 해요. 하지만 짧지 않은 고민의 시간을 거친 끝에, 우리는 각자의 선택을 마쳤습니다. 앞으로 큰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계속 아이 없이 살게 되겠지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혹시 ‘진짜 딩크’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꽤 많이 보았습니다.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딩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쓰이는 말인데요. 예를 들어 어떤 기혼 여성이 ‘결혼했지만 아이를 꼭 갖고 싶은 건 아니고 제 마음을 저도 잘 모르겠어요. 딩크로 살고 싶기도 한데 나이 들어서 후회할까 봐 불안해요’ 같은 고민 글을 올립니다. 이럴 때 제가 가장 많이 본 댓글은 이런 내용이었어요. “진짜 딩크인 사람들은 고민 같은 거 안 해요.”, “조금이라도 고민되면 늦기 전에 낳아야죠.”,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낳는 게 맞는 사람이란 얘기에요.”, “딩크는 님 같은 분들이 아니라 100퍼센트 확신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이런 댓글을 볼 때마다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치솟곤 했어요. ‘진짜 딩크’가 뭔데? (그럼 ‘가짜 딩크’는 또 뭔데?) 고민하는 사람은 낳고 싶은 사람이라니, 낳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고민하는 거잖아! 딩크는 100퍼센트 확신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니, 채점은 누가 하는데?

어쩌면 저는 이런 말들에 반박하고 싶어서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쓰게 되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거든요. 결혼한 여성이라면 당연히 엄마가 될 것이라고 모두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사회에서, 개인이 그러한 압력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하는 과정에는 당연히 흔들림과 고민이 따른다고요. ‘진짜 딩크’나 ‘100퍼센트 확신’ 같은 절대적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아이 없는 삶에 관해 얼마나 알고 고민해봤는지 모르겠지만, 몇 년 동안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했던 나도 ‘진짜 딩크’라고요. 계속 고민하다가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하고 거기에 만족하는 사람도 많다고요. 그러니까 끝까지 고민해봐도 괜찮다고요. 당신을 알지도 못하고, 당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조급해하지 말라고요. 그건 지금 또다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해요.

밤늦은 시간 어둑어둑해진 문래동 골목을 걸어 나오면서 우리 셋은 계속 이렇게 살아보자고, 나중에 딩크 할머니가 되면 같이 유튜브도 해보자며 크게 웃었습니다. (과연 유튜브는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요?) 먼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역시 반갑고 즐거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이야기도 좀 더 궁금해졌습니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 보내주신 사연을 소개했던 것처럼, 아이 없는 삶에 관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나 고민 중인 주제가 있으시면 여기(링크)에 남겨 주세요. 무자녀로 살고 계신 분들은 물론, 아이 없는 삶을 고려하거나 계획 중인 분들, 혹은 아이 없는 삶이 궁금한 분들 모두 환영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겐 오히려 꺼내기 어려웠던 이야기, 너무 사소한 것 같아서 마음 속에 담아뒀지만 한 번쯤 털어놓고 싶었던 이야기도 좋아요. 저도 천천히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어요.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독감 예방 백신을 맞기 시작했더군요.

옷 따뜻하게 챙겨 입고 다니시길.

안녕히 계세요.